경주, 나라를 잃고서야 얻은 이름

지명으로 다시 보는 대한민국
사로·서라벌에서 오늘의 경주시까지, 이름으로 걷는 천 년 도시

통일전에서 바라본 가을 경주 풍경
통일전에서 바라본 가을 경주 풍경 │ 출처: 경주시청 ‘사계절 경주’

경주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둥근 왕릉이 이어지는 대릉원, 밤하늘 아래 빛나는 첨성대, 단풍 속 불국사, 물 위에 누각이 비치는 동궁과 월지. 요즘이라면 황리단길의 한옥 카페와 골목 풍경을 먼저 떠올리는 분도 많을 거예요.

이 오래된 도시를 우리는 자연스럽게 경주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신라 사람들에게 이곳은 경주가 아니었어요. 사로, 서라벌, 금성, 계림, 왕경처럼 시대와 쓰임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름은 단순한 표지가 아닙니다. 작은 나라의 중심지가 강한 왕국의 수도로 자라고, 천 년 왕조가 막을 내린 뒤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의 관광도시가 되기까지, 경주의 변화가 이름 속에 차곡차곡 남아 있어요.

서라벌은 어떻게 경주가 되었을까요? 경주 이름의 변천사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익숙한 유적과 여행지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1. 사로·서라벌 – 경주 이름의 시작

경주의 가장 이른 이름으로는 사로서라벌이 전합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건국 무렵의 중심지가 서라벌로 기록되어 있고, 중국 기록에는 사로국이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사로·사라·서나벌·서야벌·서라벌처럼 표기가 여러 가지인 것은 당시의 우리말 소리를 한자로 옮겨 적었기 때문이에요. 글자는 달라도 서로 비슷한 이름을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은 서라벌입니다. 처음에는 초기 나라와 중심지를 가리키던 말이었지만, 신라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도를 뜻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어요.

서라벌은 오늘의 서울과도 이어집니다. 서라벌·서벌 같은 말이 오랜 시간 소리 변화를 거치며 수도를 뜻하는 말이 되었고, 그것이 지금의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는 견해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나라의 이름이었던 서라벌이 훗날 수도를 뜻하는 말이 되고, 다시 대한민국 수도의 이름으로 남은 셈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삼국사기 판본. 경주 이름의 변천사의 시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삼국사기』 판본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세로쓰기 한문으로 인쇄된 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의 첫 면
『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의 첫 면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2. 금성·계림·왕경 – 신라의 수도가 품은 여러 이름

신라가 나라의 모습을 갖춰가면서 수도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해졌습니다.

금성은 왕이 머물던 성과 수도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였습니다. 계림은 김알지 탄생 설화에서 시작된 이름이에요.

『삼국사기』에 따르면 65년, 금성 서쪽의 숲에서 흰 닭이 울고 있었고 나뭇가지에는 금빛 궤짝이 걸려 있었습니다. 궤짝을 열자 사내아이가 나왔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김씨 성을 주고 이름을 알지라 했다고 해요. 숲의 이름도 시림에서 계림, 곧 ‘닭의 숲’으로 바뀌었습니다.

김알지의 후손 미추가 훗날 김씨 가운데 처음으로 신라 왕이 되면서 이 이야기는 신라 왕실의 시작을 설명하는 중요한 설화가 됐습니다. 계림이라는 이름도 숲을 넘어 신라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였어요.

경주 이름의 변천사에 등장하는 계림의 오래된 나무와 가을 숲길
가을빛으로 물든 경주 계림과 계림비각 │ 출처: 경주시청·경주문화관광 「사계절 경주」

『삼국사기』에는 503년 지증왕 때 나라 이름을 신라로 정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414년에 세운 광개토왕릉비에도 이미 ‘신라’라는 표기가 보여요. 그래서 503년을 신라라는 이름이 처음 생긴 해라기보다, 여러 표기 가운데 공식 명칭을 정비한 시점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서라벌이라는 이름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수도는 서라벌과 금성, 왕경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어요. 왕경은 말 그대로 왕이 사는 수도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들은 앞의 이름이 사라지고 새 이름이 그 자리를 완전히 대신한 것이 아닙니다. 서라벌·금성·계림·왕경이 시대와 기록, 쓰임에 따라 함께 사용됐어요.

신라는 건국부터 멸망까지 수도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56명의 왕이 같은 지역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렸고, 덕분에 오늘날 경주 땅에는 천 년 수도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경주 대릉원에 여러 신라시대 고분이 모여 있는 모습을 촬영한 항공사진
크고 작은 신라시대 고분 23기가 모여 있는 경주 대릉원의 항공 전경 │ 출처: 경주시 경주문화관광, 「고분의 도시 경주, 개성 있는 왕릉 찾기」

3. 경주 – 신라가 사라지고 받은 이름

신라 말, 왕실의 힘은 크게 약해졌습니다.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수도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이고 궁궐을 약탈하면서 신라는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어요.

그 뒤 왕위에 오른 경순왕은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935년 고려에 나라를 넘겼습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순하면서 오래 이어진 왕조도 막을 내렸어요.

이때 고려는 신라의 옛 수도를 경주라 하고 경순왕에게 식읍으로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경주라는 지명이 역사 기록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경주(慶州)를 글자 그대로 풀면 ‘경사로운 고을’ 정도가 됩니다. 천 년 왕조가 끝난 자리에 붙은 이름이라 생각하면 묘한 여운이 남지요.

나라와 수도의 지위는 사라졌지만 사람들과 생활, 사찰과 무덤, 성터와 길은 남았습니다. 도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역할과 이름을 바꾸며 다음 시대로 넘어갔습니다.

경주라는 이름은 신라의 시작이 아니라, 신라가 끝난 자리에서 시작됐습니다.

경주 흥륜사 서편의 철솥에서 함께 출토된 고려시대 청동 공양구 일부
경주 흥륜사 서편의 철솥에서 함께 출토된 고려시대 청동 공양구 일부 │ 출처: 경주시청, 「경주 흥륜사 서편에서 고려시대 공양구 유물 54점 출토」

4. 동경·계림부·경주부 – 옛 수도의 이름은 계속 바뀌었다

고려는 신라의 옛 수도를 중요한 도시로 대했습니다. 987년에는 경주를 동경으로 고쳤어요. 고려 수도 개경에서 바라본 동쪽의 중심지, 곧 ‘동쪽 수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름과 위상은 한 번 정해진 채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1012년에는 다시 경주가 됐고, 1014년에는 안동대도호부로 바뀌었다가 1030년 다시 동경이 됐어요.

고려시대 경주의 행정 중심이었던 경주읍성
고려시대 경주의 행정 중심이었던 경주읍성에 남아 있던 복원전 성벽 일부와 주변 유구 │ 출처: 경주시 경주문화관광, 「경주읍성」

고려 중·후기에는 신라 부흥을 내세운 움직임과 반란이 일어나면서 도시의 지위도 흔들렸습니다. 1204년에는 다시 경주로, 1308년에는 계림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신라의 옛 이름인 계림이 수백 년 뒤 행정 명칭으로 되돌아온 것이죠.

조선 태종 때인 1413년에는 경주부가 됐습니다. 이후 경주는 영남의 큰 고을로 이어졌고, 경주향교와 옥산서원, 양동마을 같은 조선시대의 문화도 이 땅에 자리 잡았습니다.

경주의 역사는 신라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신라가 남긴 빛이 너무 강해 그 뒤의 시간이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불리는 경주 최부자 가문의 종가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불리는 경주 최부자 가문의 종가. 1700년 무렵 지어진 조선시대 양반가옥으로, 이웃한 향교보다 터를 낮게 닦았다고 전하며 현재 큰 사랑채와 안채, 솟을대문, 곳간 등이 남아 있다 │ 출처: 경주시 경주문화관광, 「신라 이후의 천년 경주 ‘조선시대의 경주’」

5. 경주군에서 통합 경주시로 – 지금의 이름이 완성되기까지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경주부는 1895년 지방제도가 바뀌면서 경주군이 됐습니다.

1931년에는 경주면이 경주읍으로 승격됐고, 1955년에는 경주읍이 경주시가 됐어요. 이때 경주시를 제외한 주변 지역은 월성군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하나였던 경주가 도시인 경주시와 농어촌 지역인 월성군으로 나뉜 것이죠.

1989년 월성군은 다시 경주군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1995년 경주시와 경주군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지금의 통합 경주시가 출범했어요.

오늘날 경주시는 신라의 수도가 있던 도심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일대부터 감포와 문무대왕릉이 있는 동해안, 양동마을이 있는 북쪽 지역까지 모두 경주에 포함돼요.

작은 나라의 중심지였던 사로와 서라벌에서 출발한 이름의 역사는 경주와 동경, 계림부와 경주부를 거쳐 오늘의 경주시로 이어졌습니다.

관광객과 차량으로 활기를 띠는 오늘날 경주 황리단길의 거리 풍경
관광객과 차량으로 활기를 띠는 오늘날 경주 황리단길의 거리 풍경 │ 출처: 경주시청

경주 이름의 변천사 연표

시대 연도 이름 의미와 변화
신라 기원전 57년 무렵 서라벌·금성·계림·왕경 초기에는 나라와 중심지를 함께 가리켰고, 신라가 성장하면서 수도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이어짐
고려 935년 경주 신라가 고려에 귀순한 뒤 처음 등장
987년 동경 고려의 동쪽 수도로 격상
1012년 이후 경주·안동대도호부·동경 도시의 위상에 따라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뀜
1204년 경주 반란 이후 다시 경주로 개편
1308년 계림부 신라시대의 옛 이름 계림이 다시 등장
조선 1413년 경주부 조선시대 영남의 큰 고을
1895년 경주군 지방제도 개편으로 군이 됨
대한민국 1955년 경주시·월성군 경주읍은 시로, 주변 지역은 월성군으로 개편
1989년 경주시·경주군 월성군이 다시 경주군으로 개칭
1995년 통합 경주시 경주시와 경주군이 합쳐져 현재의 경주시 출범

※ 서라벌·금성·계림·왕경은 앞 이름을 뒤 이름이 차례로 대체한 공식 지명이 아닙니다. 금성은 왕성, 계림은 숲과 국호, 왕경은 왕이 있는 수도를 가리키는 말로 시대와 쓰임에 따라 함께 사용됐습니다.

경주 여행의 공식이 바뀌다

도시의 범위는 신라시대보다 훨씬 넓어졌지만 오래된 이름들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계림은 지금도 숲의 이름이고, 월성은 신라 왕궁이 있던 자리로 남아 있어요. 서라벌은 학교와 도로, 행사와 상호 등에서 경주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계속 사용됩니다.

오랫동안 경주 여행의 공식은 분명했습니다. 불국사에 가고, 석굴암을 보고, 첨성대 앞에서 사진을 찍고, 대릉원을 한 바퀴 도는 것이었죠.

그런데 요즘 경주를 여행하는 방식은 조금 달라졌어요. 낮에는 첨성대와 왕릉을 걷고, 저녁에는 황리단길에서 식사한 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보러 갑니다. 한옥 카페 창밖으로 신라 왕릉이 보이고, 골목을 걷다가 천 년이 넘은 유적과 마주치기도 해요.

분홍빛 노을 아래 황리단길 루프탑 카페 너머로 이어지는 한옥 지붕 풍경
해 질 무렵 황리단길의 루프탑 카페에서 바라본 한옥 지붕 │ 출처: 경주시 경주문화관광, 「달빛테라피 ‘경주야경산책’」

황남동과 사정동의 포석로 일대에 한옥 카페와 식당, 작은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황리단길은 경주에서 가장 젊은 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거리 역시 신라의 흔적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황리단길 바로 옆에는 대릉원의 거대한 왕릉들이 있고, 동쪽으로 걸으면 첨성대와 계림, 월성으로 이어져요.

해가 지면 여행의 중심은 동궁과 월지로 옮겨갑니다. 문무왕 때인 674년에 조성된 월지는 이제 경주를 대표하는 야경 명소가 됐어요. 조명이 켜지면 복원된 누각이 수면 위에 거울처럼 비치면서 낮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어두운 밤 조명을 밝힌 경주 월정교와 남천 수면에 비친 붉은빛 반영
남천 위로 불을 밝힌 경주 월정교. 화려한 단청과 조명이 수면에 비치며 경주의 대표적인 야경을 이룬다. │ 사진: Insung Yoon

경주를 걷다 보면 여러 시대가 한꺼번에 보입니다. 서라벌이라는 오래된 수도, 고려의 동경, 조선의 경주부,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오늘의 경주시가 한 땅 위에 포개져 있어요.

새로운 공간이 옛 도시를 밀어낸 것은 아닙니다. 서라벌이 남긴 공간 위에 오늘의 경주를 즐기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는 것이죠. “낮에 제대로 봐야 하는 문화재”에서 “밤에 감성적으로 경험하는 공간”으로, 그리고 “역사 공부처럼 봐야 하는 곳”에서 “왕릉 옆 한옥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곳”으로.

경주는 이름이 바뀔 때마다 과거를 지워버린 도시가 아닙니다. 시대마다 불렸던 이름과 그 흔적을 하나씩 품으며 오늘까지 이어온 도시입니다.

기와지붕 한옥과 돌담, 소나무가 어우러진 경주 교촌마을의 조용한 골목길
기와지붕과 돌담이 이어지는 경주 교촌마을의 고즈넉한 골목길 │ 사진: adamara

경주의 옛 이름과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

1) 첨성대·계림·월성

첨성대에서 계림을 지나 월성까지 걷는 길은 신라 수도의 중심을 만나는 코스입니다. 첨성대는 신라의 천문 관측 시설로 알려져 있고, 계림은 김알지 설화의 무대이며, 월성은 신라 왕궁이 있던 자리예요.

특히 계림은 옛 지명이 실제 장소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경주 이름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입니다.

첨성대와 계림·월성 일대를 걷는 경주 여행객들

첨성대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839-1
관람시간: 첨성대 09:00~22:00(동절기 21:00까지)
첨성대 경주문화관광 공식 안내

계림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
계림 경주문화관광 공식 안내

월성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387-1
월성 경주문화관광 공식 안내

2) 대릉원과 황리단길

대릉원에는 신라 왕과 귀족의 무덤이 모여 있습니다. 대릉원 안 천마총에서는 거대한 돌무지덧널무덤의 내부 구조도 살펴볼 수 있어요.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늘날 경주에서 가장 활기찬 황리단길이 이어집니다. 신라 왕릉과 한옥 카페 골목을 함께 걸을 수 있는, 경주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어요.

황리단길 한옥 카페에서 바라본 기와지붕과 신라 왕릉

대릉원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31-1
전화: 054-750-8652
관람시간: 09:00~22:00(입장 마감 21:30)
관람료: 대릉원 무료, 천마총 내부 관람은 별도 요금
대릉원 경주문화관광 공식 안내

황리단길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로 일대
홈페이지: https://www.gyeongju.go.kr/hwangridan/index.nm

3)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금관과 성덕대왕신종,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적지만 둘러보면 건물터와 돌만 보일 수 있지만, 박물관에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확인하면 경주라는 도시가 훨씬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신라 문화유산을 전시하는 국립경주박물관 전경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전화: 054-740-7500
관람시간: 10:00~18:00(입장 마감 17:30)
야간 개장: 3~10월 매주 토요일 10:00~20:00
휴관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임시 휴실일: 3월·11월 두 번째 월요일
※ 임시 휴실일에도 정원과 옥외전시장은 정상 운영됩니다.
홈페이지: https://gyeongju.museum.go.kr/

4) 동궁과 월지

문무왕 때인 670년대에 조성된 동궁과 연못입니다. 신라 왕실의 생활을 보여주는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된 곳이기도 해요.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지면 복원된 누각이 수면에 비치면서 경주를 대표하는 야경이 펼쳐집니다. 신라 유적이 오늘날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조명이 켜진 동궁과 월지가 수면에 비친 야경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전화: 054-750-8655
관람시간: 09:00~22:00(입장 마감 21:30)
휴무일: 연중무휴
동궁과 월지 경주문화관광 공식 안내

5) 불국사와 석굴암

신라 불교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세계유산입니다.

현재의 목조건물에는 조선시대 중창과 현대 복원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다보탑·석가탑과 석조 기단에서는 통일신라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만날 수 있어요.

경주 불국사의 전각과 석탑이 어우러진 풍경

불국사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
전화: 054-746-9913
홈페이지: http://www.bulguksa.or.kr/

석굴암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석굴로 238
전화: 054-746-9933
홈페이지: http://www.seokguram.org/

관람시간
3~9월: 09:00~18:00
2월·10월: 09:00~17:30
11~1월: 09:00~17:00

한량아빠 추천 동선

불국사와 석굴암은 경주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오전에 먼저 다녀오는 것이 좋습니다.

오후에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의 전체 역사를 살펴본 뒤 첨성대·계림·월성으로 이동해 보세요. 이 구간은 서로 가까워 천천히 걸어서 둘러보기 좋습니다.

대릉원 돌담길을 따라 황리단길로 이동해 저녁을 먹고, 동궁과 월지의 야경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됩니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하루에도 가능하지만 일정이 꽤 알찹니다. 여유롭게 보고 싶다면 불국사·석굴암과 시내 유적을 이틀로 나누는 편이 좋아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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