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하늘의 허락을 받지 못한 남자의 도시

지명으로 다시 보는 대한민국 ⑩
하슬라·명주·임영, 강릉에서 만나는 오래된 이름

강릉 정동진 해변에 하얀 파도가 밀려오고, 해안 언덕 위에 배 모양의 썬크루즈 리조트가 보이는 풍경.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 강릉 정동진 해변과 언덕 위 썬크루즈 리조트 │ 사진: Minku Kang

강릉에서는 바다를 보며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됩니다. 경포에서 산책하고, 초당에서 두부를 먹고, 정동진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죠.

강릉을 여행하다 보면 재미있는 이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골목에는 ‘명주’, 오래된 관아에는 ‘임영’, 미술관에는 ‘하슬라’라는 이름이 붙어 있거든요.

모두 강릉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어떤 것은 도시의 옛 이름이고, 어떤 것은 공식 이름과 함께 쓰던 별칭이죠.

이 이름들에는 바다로 나아간 신라 장군도, 왕이 될 뻔했던 사람도 등장합니다. 강릉 이름 유래를 알고 나면 익숙한 여행지에서도 새로운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1. 명주, 강릉 골목에서 신라의 흔적을 만나다

강릉의 바다를 잠시 벗어나 오래된 골목으로 들어가 봅니다. 집과 가게 사이를 걷다 보면 ‘명주’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옵니다.

강릉 명주동 거리의 옛 성벽과 흰색 벽돌 담장이 함께 하는 모습. 강릉 이름 유래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 하는 공간
강릉의 옛 이름 ‘명주’가 남아 있는 명주동 거리의 오래된 담장 │ 출처: 한국관광공사, 촬영: 우창민 (공공누리 제1유형)

‘명주(溟州)’는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에 붙인 강릉의 옛 이름입니다. 지금의 명주동은 해방 이후 일본식 이름인 ‘대화정(大和町)’을 강릉의 옛 이름을 살린 ‘명주동’으로 바꾸면서 생겼습니다. 도시 전체를 부르던 이름이 오늘날에는 한 동네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명주에는 뜻밖의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하늘의 허락을 받지 못해 신라의 왕위를 놓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785년 선덕왕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오를 유력한 인물로 김주원이 거론됐습니다.

『삼국유사』는 그가 왕위를 놓친 사연을 전합니다. 김주원을 왕으로 맞으려 했지만, 경주의 북천이 갑자기 불어나 그가 강을 건너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 김경신이 궁궐에 들어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가 신라의 원성왕입니다.

비가 내려 강을 건너지 못한 사이에 왕이 바뀌었다니, 김주원으로서는 허탈한 일이었겠죠. 물론 당시 왕위를 둘러싼 세력 경쟁도 있었으므로, 이를 강물이 만든 불운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왕이 되지 못한 김주원이 자리 잡은 곳이 바로 명주였습니다. 이곳에는 그의 친족과 재산 기반이 있었습니다. 이후 명주군왕으로 봉해진 그는 이곳에서 세력을 키웠고, 후손들도 지역의 유력한 가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강릉에는 지금도 그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명주군왕릉’이 있습니다. 신라의 왕으로 즉위하지는 못했지만, 명주군왕이라는 칭호가 무덤의 이름에도 남았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자리한 명주군왕 김주원의 무덤과 주변 석조물.
신라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명주로 물러난 김주원의 무덤, 강릉 명주군왕릉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명주’는 바다를 품은 큰 고을이었다

그렇다면 김주원이 내려온 명주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명주의 ‘명(溟)’에는 바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다를 곁에 둔 고을에 어울리는 글자죠. 그런데 당시 명주는 오늘날의 강릉시만을 가리키는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통일신라는 전국을 아홉 개의 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명주는 그중 하나였습니다. 지금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동해안에 걸친 넓은 지역을 관할했고, 그 중심지가 강릉에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강릉을 여행하러 가지만, 당시에는 주변 지역을 다스리는 중요한 고을이었던 것이죠. 김주원에게도 명주는 중앙 정계에서 물러난 뒤 새로운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강릉의 푸른 동해 바다와 백사장, 해변을 따라 펼쳐진 소나무 숲과 작은 방파제 풍경.
동해의 푸른 바다와 강릉의 해안 풍경. 통일신라시대 명주는 강릉을 중심으로 동해안의 넓은 지역을 관할하던 고을이었다. │ 사진: Seongil Park

흥미롭게도 명주라는 이름은 근현대에 행정구역 이름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1955년 강릉읍과 주변 지역이 강릉시로 승격되면서, 시에 포함되지 않은 강릉군 지역은 명주군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 뒤 1995년 강릉시와 명주군이 통합되면서 오늘날의 강릉시가 됐습니다. 신라의 명주와 근현대의 명주군은 범위가 서로 달랐지만, 오래된 이름을 다시 사용했다는 점은 같았습니다.

명주동을 걸을 때는 이 이름이 한때 넓은 동해안 지역을 대표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도 좋겠습니다.

3. 하슬라의 장군은 왜 배에 사자를 실었을까?

명주보다 앞선 이름으로는 ‘하슬라(何瑟羅)’가 있습니다. 옛 기록에는 ‘하서량(河西良)’·‘하서라(河西羅)’·‘아슬라’ 등의 표기도 등장합니다. 오늘날 하슬라아트월드에서 만나는 그 낯선 이름에도 오래된 강릉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하슬라의 뜻을 ‘큰 바다’ 등으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고대 이름의 정확한 어원은 하나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 이름을 쓰던 고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록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512년, 하슬라주 군주였던 이사부는 우산국을 복속시키러 나섭니다. 우산국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섬나라였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사부는 섬사람들을 힘으로 굴복시키기보다 꾀를 쓰기로 합니다. 그가 준비한 것은 나무로 만든 사자였습니다. 사자 모형을 배에 싣고 해안에 도착한 뒤,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들을 풀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죠.

바다를 건너온 배 위에 낯선 짐승들이 서 있는 모습은 꽤 위압적이었을 겁니다. 기록은 우산국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항복했다고 전합니다.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이사부사자공원의 입구. 언덕에 설치된 이사부사자공원 조형물과 산책로, 나무와 대나무숲이 보이는 풍경.
신라 장군 이사부의 이름을 딴 삼척 이사부사자공원. 이사부는 하슬라주 군주로 재임하던 512년 우산국을 복속시킨 인물이다. │ 출처: 한국관광공사 (공공누리 제1유형)

이 일화 덕분에 하슬라는 낯선 지명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신라가 동해로 나아가던 시기에 이사부가 활동했던 거점이라는 구체적인 모습이 생깁니다.

강릉의 바다는 오래전부터 사람과 물자가 오가고, 때로는 군대가 건너가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해변에서 만나는 하슬라라는 이름 뒤에는 그런 바다의 역사가 있습니다.

4. 고려시대에 자리 잡은 ‘강릉’, 강원도의 이름이 되다

하슬라와 명주를 거쳐, 고려시대에는 오늘날의 ‘강릉(江陵)’이라는 이름이 자리를 잡습니다.

1263년에는 영동 지역을 가리키는 광역 행정구역 이름인 ‘강릉도’가 등장하고, 1308년에는 고을 이름을 강릉부로 바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래서 1308년을 강릉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해로 설명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강릉 임영관 삼문의 기와지붕과 굵은 목조 기둥, 고려시대 주심포 양식을 보여주는 전통 건축물의 정측면.
고려시대 강릉 객사의 정문으로 사용된 임영관 삼문.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고려시대 목조건축의 귀중한 유산이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공누리 제1유형)

강릉의 한자는 강 ‘강(江)’과 언덕 ‘릉(陵)’입니다. 실제로 시내에는 남대천이 흐릅니다. 다만 남대천과 어느 언덕을 보고 강릉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확인된 기록이 없어, 글자 뜻과 작명 이유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름에 얽힌 더 분명한 이야기는 ‘강원도’에 있습니다.

1395년 조선은 강릉의 ‘강’과 원주의 ‘원’을 따서 강원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강릉과 원주가 도내 주요 고을이었다는 사실이 도 이름에도 반영된 것입니다.

앞서 춘천편을 읽었다면 더 재미있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도청은 춘천에 있지만, 강원이라는 이름의 두 글자는 강릉과 원주에서 왔으니까요.

강릉부의 지형과 행정 중심지를 표현한 옛 지도인 강릉부지도.
옛 강릉의 모습을 담은 강릉부지도.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강릉’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강원도라는 이름에도 남았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공누리 제1유형)

5. 강릉도호부에서 강릉시까지

고려 말인 1389년, 강릉부는 ‘강릉대도호부’로 승격됩니다. 오늘날 원도심에서 만나는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이름도 여기에서 왔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한 사람이 저지른 중대한 죄 때문에 고을 전체가 강릉현으로 강등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강릉대도호부 관아 의운루의 정면 모습.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된 팔작지붕과 붉은 기둥, 난간을 갖춘 누각 건축물.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의운루(倚雲樓). 강릉이 오랫동안 영동 지역의 행정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역사 공간이다. │ 출처: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1666년 강릉에서 부모에 대한 중대한 범죄인 강상죄가 발생하자, 조정은 강릉을 대도호부에서 현으로 강등했습니다. 강원도의 이름도 강릉 대신 양양의 이름을 넣은 ‘원양도’로 바뀌었죠. 1675년 강릉이 대도호부로 복원되면서 도 이름도 다시 강원도로 돌아왔습니다.

1782년에는 강릉 출신 이택징이 역모 사건으로 처벌받으면서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그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강릉은 다시 현으로 강등됐고, 도의 이름도 원주와 춘천에서 따온 ‘원춘도’로 바뀌었습니다. 『정조실록』에는 1791년 강릉을 다시 대도호부로 복원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을의 격이 오르내리며 도의 이름까지 달라졌지만, ‘강릉’이라는 두 글자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근대에는 이름 뒤의 행정 단위가 달라집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강릉부가 설치됐고, 이듬해인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강릉은 강원도에 속한 ‘강릉군’이 됐습니다. 이후 1931년 강릉군의 중심 시가지인 강릉면이 강릉읍으로 승격됐습니다.

오늘날처럼 ‘강릉시’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55년입니다. 강릉읍과 성덕면·경포면을 합쳐 시로 승격한 것이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나머지 지역은 명주군으로 분리됐다가, 1995년 다시 합쳐져 오늘날의 강릉시가 됐습니다.

하슬라에서 명주로 바뀔 때는 이름 자체가 달라졌지만, 강릉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은 뒤에는 주로 그 뒤에 붙는 행정 단위와 관할 범위가 달라졌습니다. 부와 군, 읍과 시를 거치는 동안에도 같은 두 글자가 이어져 온 셈입니다.

강릉 동해안의 푸른 바다와 해안선을 따라 솟은 기암괴석, 바위 위에 우거진 소나무 숲과 멀리 보이는 백사장.
푸른 동해와 기암괴석,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강릉의 해안 풍경 │ 사진: LUHAN YANG

강릉 이름 유래 연표

강릉 이름 유래 연표

시대 연도 이름 의미와 변화
신라 397년 하슬라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강릉의 옛 이름. 신라가 처음 붙인 이름인지는 불분명함
757년 명주 경덕왕 때 명주로 개칭. 통일신라의 9주 가운데 하나로 넓은 동해안 지역을 관할
고려 936년 동원경 고려의 동쪽 거점으로 격상
940년 명주 다시 명주로 개칭. 이후 고을의 위상에 따라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뀜
1263년 강릉도 영동 지역을 가리키는 광역 행정구역 이름에 ‘강릉’이 등장
1308년 강릉부 고을 이름이 강릉부로 바뀜. 오늘날의 도시 이름으로 이어지는 ‘강릉’이 자리 잡음
1389년 강릉대도호부 대도호부로 승격. 조선시대에도 이 지위를 이어감
조선 1395년 강원도 강릉과 원주의 첫 글자를 따서 도 이름을 정함. 강릉의 고을 이름이 아닌 상위 행정구역 명칭
1666년 강릉현 강릉에서 발생한 강상죄로 현으로 강등. 강원도도 원양도로 개칭
1675년 강릉대도호부 대도호부로 복원. 도 이름도 강원도로 환원
1782년 강릉현 강릉 출신 이택징의 역모 사건으로 다시 강등. 강원도도 원춘도로 개칭
1791년 강릉대도호부 대도호부로 복원. 원춘도도 다시 강원도로 바뀜
1895년 강릉부 23부제 시행으로 광역 행정구역인 강릉부 설치
1896년 강릉군 13도제 시행으로 강원도에 속한 강릉군이 됨
일제강점기 1931년 강릉읍 강릉군 안의 중심 시가지인 강릉면이 읍으로 승격
대한민국 1955년 강릉시·명주군 강릉읍과 성덕면·경포면을 합쳐 강릉시로 승격. 나머지 지역은 명주군으로 개편
1995년 통합 강릉시 강릉시와 명주군이 합쳐져 오늘날의 강릉시 출범

※ 주요 이름과 행정구역의 변화를 정리한 연표입니다. 강릉도는 광역 행정구역, 강릉부는 고을 이름으로 관할 범위가 달랐습니다. 1895년 강릉부 역시 광역 행정구역으로, 1896년 강릉군과 구분됩니다. ‘임영’은 공식 이름을 차례로 대체한 지명이 아니라 강릉과 함께 쓰던 별호입니다.

오늘의 강릉, 세계와 만나는 동해안 도시

따뜻한 조명이 비치는 카페 내부에서 한 사람이 커피를 준비하고 있다. 벽면에는 커피 도구와 주전자들이 진열되어 있고, 카운터에는 커피 제품들이 놓여 있다.
커피 도시에 새로운 매력을 더하는 강릉의 카페 풍경 │ 사진: rawkkim

오늘날 강릉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해안 관광도시입니다. 자연 풍경에 음식과 지역 문화가 어우러져, 해수욕을 즐기는 여름뿐 아니라 사계절 여행객이 찾는 곳이 됐습니다.

세계 무대에서는 동계스포츠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피겨스케이팅·쇼트트랙·컬링 등 빙상 경기가 강릉에서 열렸죠.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도 이 경기장들이 다시 세계의 젊은 선수들을 맞았습니다.

지역의 전통도 세계와 만나는 통로가 됩니다. 강릉단오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며, 2023년에는 강릉이 유네스코 미식 창의도시로 선정됐습니다. 전통음식과 차 문화에 새로운 커피 문화가 더해지며, 도시의 음식도 국제 교류의 자산이 된 것입니다.

한때 넓은 동해안 지역을 다스리던 고을은 이제 관광과 문화, 스포츠로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오래된 이름 위에 오늘의 이야기를 쌓아 가는 도시가 강릉입니다.

강릉단오제 행사장에서 흰색 의상과 노란색·붉은색 한복을 입은 가면극 공연자 두 명이 부채를 들고 공연하는 모습. 뒤편에 많은 관람객이 모여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의 전통 가면극 공연 │ 출처: 강릉단오제 사진자료 (공공누리 제3유형)
강릉 정동진 해안 절벽 위에 자리한 배 모양의 썬크루즈 리조트. 분홍빛 노을이 물든 하늘과 푸른 동해 바다가 펼쳐진 저녁 풍경.
붉게 물든 저녁 하늘과 동해를 배경으로 불을 밝힌 강릉 정동진 썬크루즈 리조트 │ 사진: photos of korea

AI가 추천하는 강릉 역사 여행

강릉의 지명 이야기는 원도심의 골목과 옛 관아, 산자락의 무덤, 바닷가 문화공간에 이어져 있습니다. 이름의 흔적을 따라 걸어볼 만한 다섯 곳을 골랐습니다.

1. 명주동 골목 | 골목에 남은 명주

강릉의 옛 이름 ‘명주’는 오늘도 명주동이라는 동네 이름에 남아 있습니다. 오래된 집과 골목 사이로 문화공간과 카페가 들어서 있어, 잠시 발걸음을 늦추며 둘러보기 좋습니다.

신라시대 골목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옛 지명이 오늘의 생활공간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보는 산책입니다.

강릉 명주동 거리의 기와지붕 한옥을 활용한 카페
출처: 한국관광공사, 사진: 강원지사 (공공누리 제1유형)
  •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명주동 일대
  • 이용: 골목 상시 개방. 개별 문화공간과 상점은 운영시간 별도
  • 방문 안내: 대한민국 구석구석

2. 강릉대도호부 관아·임영관 삼문 | 강릉과 임영을 함께 만나는 곳

강릉이 오랫동안 지역의 중심 고을이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옛 관아를 둘러보고 임영관 삼문 앞에 서면, 본문에서 읽었던 ‘강릉’과 ‘임영’이 건물과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임영관은 관아 전체의 이름이 아니라 객사의 이름입니다. 명주동 골목과 함께 원도심 산책에 묶어보세요.

임영관 우측 전경
출처: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제1유형)

3. 명주군왕릉 | 김주원 이야기를 따라 산자락으로

본문에 등장한 김주원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곳입니다. 명주동이 옛 이름을 품은 생활공간이라면, 명주군왕릉은 그 이름과 연결된 인물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도심 골목과는 다른 조용한 유적을 보고 싶다면 일정에 더해보세요. 성산면에 있어 원도심과는 별도 이동이 필요합니다.

강릉 명주군왕릉 전경
강릉 명주군왕릉 전경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공식 안내에서 관람시간과 휴무일을 확인하지 못해 별도로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4. 하슬라아트월드 | 옛 이름을 이어 쓰는 오늘의 공간

강릉의 옛 이름 ‘하슬라’를 문화공간의 이름으로 다시 만나는 곳입니다. 미술관과 야외 조각공원을 둘러보며, 오래된 지명이 오늘의 예술과 관광 속에서 쓰이는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옛 하슬라의 유적을 찾아가는 방문이라기보다, 그 이름을 이어 쓰는 오늘의 강릉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강릉 하슬라아트월드의 알록달록한 유리 외벽 건물 앞에 꽃무늬 옷을 입은 남성과 원피스를 입은 여성 형상의 조형물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
강릉의 옛 이름 ‘하슬라’를 이어받은 하슬라아트월드. 화려한 색채의 건축물과 독특한 조형물이 어우러진 복합예술공간이다. │ 출처: 한국관광공사 (공공누리 제3유형)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 율곡로 1441
  • 관람시간: 09:00~18:00, 연중무휴
  • 입장: 유료. 권종별 요금은 공식 예매 안내 참조
  • 문의: 033-644-9411
  • 홈페이지: 하슬라아트월드

5. 정동진해변·모래시계공원 | 이름을 생각하며 걷는 바다

정동진에서는 해돋이를 기다리는 즐거움에 이름을 살펴보는 재미를 더할 수 있습니다. ‘정동’은 어디를 기준으로 한 말일까요? 본문의 정동진 이야기를 떠올리며 해변을 걸어보세요.

해변과 이어지는 모래시계공원을 함께 둘러보면 산책을 마무리하기 좋습니다. 공원 관람과 주변 레일바이크·박물관 이용은 각각 구분해서 계획하세요.

동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정동진해변의 일출 풍경.
동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정동진해변의 일출 풍경 │ 출처: 한국관광공사
  •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일대
  • 모래시계공원 주소: 강동면 헌화로 990-1
  • 공원 이용: 상시 개방, 연중무휴
  • 공원 문의: 033-640-4533
  • 방문 안내: 한국관광공사 모래시계공원 안내

AI 추천 동선

하루에 다섯 곳을 모두 보려 하기보다 원도심과 해안으로 나눠 둘러보세요. 원도심은 ‘명주동 골목 → 강릉대도호부 관아·임영관 삼문’으로 묶으면 좋습니다. 차를 가져왔다면 명주군왕릉을 먼저 방문하고 원도심으로 들어와도 좋고요.

해안은 ‘하슬라아트월드 → 정동진해변·모래시계공원’을 별도 반나절이나 다음 날 일정으로 추천합니다. 해돋이가 목적이라면 정동진부터 방문하세요. 아이와 함께라면 골목과 관아를 걷는 날, 미술관과 바다를 즐기는 날로 나누면 한결 여유롭습니다.

※ 방문 정보는 2026년 10월 확인한 공식 안내를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운영시간과 요금은 방문 전 최신 안내를 확인해주세요.

참고자료

  1. 강릉시청, 「유래와 연혁」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릉시」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명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주원」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명주군왕릉」
  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원특별자치도」
  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관동지방」
  8. 유네스코, 「강릉단오제」
  9. 유네스코, 「2023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신규 선정 도시」
  10. 국제올림픽위원회,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대회 안내」
  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릉 대도호부 관아」
  1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릉 임영관 삼문」
  13. 국제올림픽위원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 안내」
  14.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삼일포 매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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