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봄내가 된 소머리

지명으로 다시 보는 대한민국 ⑥
‘오근내’와 ‘우수주’, ‘춘주’를 지나 오늘의 봄내 ‘춘천’이 되기까지

노을 진 소양강과 소양강처녀상
노을 진 소양강과 소양강처녀상 │ 출처: EBS·공유마당(CC BY 4.0) │ 일부 편집

춘천을 떠올리면 도시보다 먼저 물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고, 넓어진 물길은 의암호가 되어 도시의 허리를 천천히 감쌉니다. 아침 안개가 봉의산 자락을 덮었다가 걷히는 날이면 ‘춘천’이라는 이름도 저 풍경 속에서 태어났을 것만 같습니다.

‘춘(春)’과 ‘천(川)’. 봄과 물이 나란히 놓인 두 글자는 이 도시를 위해 처음부터 준비된 이름처럼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름의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춘’과 ‘천’은 서로 다른 시대에 등장합니다. 고려 때 먼저 ‘춘’이 모습을 드러냈고, 몇백 년 뒤 조선에 이르러 ‘천’이 그 곁에 놓였습니다. 그보다 먼 옛날에는 오근내·우수주·수약주·삭주 같은 낯선 이름들이 이 땅을 지나갔습니다. 춘천 이름 유래를 따라 이름에 쌓인 시간의 흔적을 되짚어봅니다.

1. 맥국, 기록이 전하는 이 땅의 첫 이름

춘천에는 적어도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습니다. 봉의산 자락의 교동 동굴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생활했던 흔적과 무덤이 발견됐고, 중도와 천전리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집터와 고인돌을 비롯해 여러 시대의 유적이 확인됐습니다.

춘천 교동 동굴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
춘천 교동 동굴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e뮤지엄 (공공누리 제1유형)

그런데 문헌이 들려주는 이 지역의 첫 이름은 고을 이름이 아니라 나라 이름이었습니다. 『고려사』 지리지는 춘주가 본래 ‘맥국(貊國)’이었다고 적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도 이곳을 옛 맥의 땅으로 기록했습니다.

이곳의 지명과 전승에도 맥국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신북읍 발산리에는 맥국의 궁궐터였다고 전하는 ‘궐터말’과 ‘맥뚝’, 유포리에는 성터로 전하는 ‘맥국성지’와 임금이 나랏일을 보았다는 ‘문정’ 같은 지명이 이어집니다.

2. 우수주, 신라 동북부의 중심이 되다

637년 신라는 이곳에 ‘우수주(牛首州)’를 설치했습니다. 춘천이 연대가 분명한 공식 행정명을 얻은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우수주’라는 이름, 사실 오늘의 춘천 한 곳만을 가리키는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신라의 ‘주’는 지금으로 치면 도(道)에 가까운 개념이라, 우수주도 강원도 영서지방 대부분과 함경남도 남쪽 끝까지 아우르는 꽤 넓은 땅이었습니다. 다만 그 넓은 땅을 다스리던 관청만큼은 지금의 춘천 자리에 있었죠.

울창한 숲 사이로 돌로 쌓은 성벽이 이어지는 춘천 봉의산성
6세기 후반~7세기 초 신라 토기가 발견돼, 신라 때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봉의산성 │ 출처: 강원특별자치도(공공누리 제1유형)

이 이름은 이후로도 계속 바뀝니다. 673년에는 ‘수약주(首若州)’로 공식적으로 개칭됐고요. 더 거슬러 올라가 신라의 손이 닿기 전, 고구려가 이 땅을 차지하고 있던 시절에는 ‘오근내(烏斤乃)’나 ‘수차약(首次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기록도 함께 전합니다.

그럼 ‘춘천’만을 가리키던 이름은 따로 없었을까요?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수(牛首)’나 ‘우두(牛頭)’는 둘 다 ‘소머리’라는 뜻인데, 이 ‘소머리’가 원래 이 지역의 고유 지명이었고, 여기에 광역단위를 뜻하는 ‘주’가 나중에 붙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지금도 춘천의 ‘우두동’이라는 동네 이름에 이 오래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3. 삭주, 우수주의 새로운 이름

757년 신라 경덕왕이 전국의 지명을 손보면서 이곳은 ‘삭주(朔州)’가 됩니다. 삭(朔)은 초하루라는 뜻 외에 북쪽을 나타낼 때도 쓰이던 글자입니다.

이때도 ‘삭주’는 지금의 춘천 한 도시만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1개 소경과 11개 군, 27개 현을 거느린 꽤 큰 행정·군사 거점이었죠. 강원도 영서지방 대부분과 함경남도 남단까지 뻗어 있던 이 넓은 영역의 중심 관청이 오늘날의 춘천에 있었습니다.

그 뒤 ‘삭주’는 ‘광해주(光海州)’로 다시 이름을 바꿉니다. 다만 정확히 언제 바뀌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춘천 이름 유래를 속삭이 듯 물안개가 피고 있는 소양강과 눈 덮인 산
신라의 옛 숨결이 물안개 되어 피어오르는 듯 물안개가 피고 있는 소양강과 눈 덮인 산│ 촬영: 유주영 │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CC BY)

4. 춘주, 이름에 봄이 찾아오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는 940년 ‘광해주’를 ‘춘주(春州)’로 바꾸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춘’이 이 지역의 이름에 처음 등장한 순간입니다.

이번엔 이름만 바뀐 게 아니었습니다. 고려는 신라의 광역 9주 체제를 걷어내고 전국을 청주·충주·원주 같은 훨씬 작은 ‘주’들로 다시 짰고, 춘주도 그중 하나가 되면서 비로소 관할 범위가 크게 줄었습니다.

고려시대 춘천 칠층석탑 정면 전경
‘춘주’의 시간을 지켜온 춘천 칠층석탑 │ 출처: 문화재청·공유마당(공공누리 제1유형)

995년 춘주는 지금의 북한 강원도에 있던 안변부에 소속됐습니다. 두 지역 사이에는 험한 산길이 놓여 있어, 안변을 오가야 하는 춘주 사람들의 불편이 컸습니다.

결국 춘주 사람들은 안변부의 관할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 최충헌에게 많은 뇌물을 바쳤습니다. 『고려사절요』는 그 이유를 ‘도로가 험하고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 1203년 춘주는 ‘안양도호부(安陽都護府)’로 승격됐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에 도호부에서 주로 격이 낮아졌고, 이름도 다시 ‘춘주’가 되었습니다.

그럼 이때의 춘주는 지금의 춘천과 같은 지역인가요?
아직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인제군 기린면 일대가 당시 춘주에 딸린 속현이었거든요. 신라 때보다는 훨씬 작아졌지만, 오늘날 춘천보다는 여전히 조금 더 넓은 땅이었던 셈입니다.

오봉산 자락에 자리한 춘천 청평사의 전각과 주변 풍경
고려 문신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머물렀던 춘천 청평사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공공누리 제1유형)

5. 춘천, 새로운 왕조에서 받은 이름

조선 태종 때인 1413년, 고려시대 내내 ‘춘주’로 불리던 이곳은 비로소 ‘춘천(春川)’이 됐습니다.

당시 조선은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군과 현의 이름에 붙은 ‘주(州)’를 ‘산(山)’이나 ‘천(川)’으로 바꾸었습니다. ‘춘주’도 이 원칙에 따라 ‘춘천군(春川郡)’이 됐습니다.

산이 겹겹이 둘러싼 강원도 고을의 이름을 정하면서 ‘산’ 대신 ‘내’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여러 전각과 기와지붕이 보이는 춘천향교 전경
조선시대 배움과 제향을 이어온 춘천향교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공공누리 제1유형)

조선의 마지막 왕, 춘천에 피난처를 준비하다

1888년 고종은 ‘춘천도호부’를 ‘춘천유수부’로 승격시키고, 유사시 왕이 머물 이궁(離宮)을 춘천 관아에 마련하게 했습니다. 기존 문소각을 확장·개축한 이궁은 1890년 완성됐습니다. 건물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이궁의 문으로 쓰인 위봉문과 조양루가 남아 그 흔적을 전합니다.

1896년에는 강원도 관찰부가 다름 아닌 이 옛 이궁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왕의 피난처로 준비되던 도시가, 결국 강원도 전체를 다스리는 행정 중심지가 된 것입니다.

춘천이궁과 강원도관찰부의 역사를 간직한 조양루 정면 모습
춘천이궁과 강원도관찰부의 시간을 품은 조양루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공공누리 제1유형)

6. 나누고 합치고, 오늘의 춘천시가 되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춘천유수부’는 ‘춘천군’이 됐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는 군의 도심 지역인 ‘부내면’이 ‘춘천면’과 ‘동내면’으로 나뉘었고, 1931년 춘천면이 ‘춘천읍’이 됐습니다.

광복 후에는 하나였던 ‘춘천’이 둘로 갈렸습니다. 1946년 도심의 ‘춘천읍’이 ‘춘천부’로 분리되면서 주변의 ‘춘천군’은 ‘춘성군(春城郡)’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춘천부’는 1949년 ‘춘천시’가 됐습니다.

‘춘성군’은 1992년 ‘춘천군’이라는 이름을 되찾았고, 1995년 ‘춘천시’와 합쳐져 오늘의 도농복합형 춘천시가 됐습니다.

소양강 위로 길게 뻗은 소양강스카이워크 전경
소양강 위로 길게 뻗은 소양강스카이워크 전경 │ 사진: Youngjin·Wikimedia Commons(CC BY-SA 4.0)

춘천 이름의 변천사

시대 연도 이름 의미와 변화
고대 시기 미상 맥국 후대 문헌이 전하는 이 땅의 첫 이름
고구려 점령기 5세기경~ 오근내·수차약 신라 편입 이전, 고구려 지배기의 이름
신라 637년 우수주(우두주) 군주를 두고 설치. 강원 영서~함경남도 남단을 아우른 광역단위
673년 수약주 문무왕이 개칭
757년 삭주 경덕왕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개칭. 여전히 광역단위
연대 미상 광해주 ‘삭주’ 뒤에 사용됐으나 개칭 시기는 불명
고려 940년 춘주 태조가 개칭. ‘춘’이 처음 등장하고, 광역단위에서 작은 지역단위로 축소
1203년 안양도호부 → 춘주 ‘안양도호부’로 승격됐다가 같은 해 다시 ‘춘주’로 격하
조선 1413년 춘천군 전국 군현 개편으로 ‘주’를 ‘천’으로 바꿈
1415년 춘천도호부 도호부로 승격
1888년 춘천유수부 유사시 왕이 머물 피난처로 준비
1895년 춘천군 갑오개혁으로 유수부가 폐지되고 군이 됨
일제강점기 1917년 춘천면·춘천군 춘천군 도심의 ‘부내면’을 ‘춘천면’으로 개칭
1931년 춘천읍·춘천군 ‘춘천면’이 읍으로 승격
대한민국 1946년 춘천부·춘성군 ‘춘천읍’은 ‘춘천부’로, ‘춘천군’은 ‘춘성군’으로 분리
1949년 춘천시·춘성군 ‘춘천부’가 ‘춘천시’로 개편
1992년 춘천시·춘천군 ‘춘성군’이 ‘춘천군’이라는 이름을 회복
1995년 통합 춘천시 시와 군이 합쳐져 현재의 춘천시가 출범

강원의 중심에서 세계와 만나다

밤 야외무대에서 대형 조형물과 불을 활용한 공연이 펼쳐지는 춘천마임축제 현장
조형물과 불을 활용한 공연이 펼쳐지는 춘천마임축제 현장 │ 출처: ⓒ한국관광공사(공공누리 제3유형)

오늘의 춘천은 강원특별자치도청이 자리한 강원의 행정 중심지입니다. 대학과 문화시설이 모여 있고, 수도권에서 전철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호반 관광도시이기도 합니다.

춘천은 축제를 통해 세계와도 만나고 있습니다. ‘춘천마임축제’는 프랑스 미모스축제, 영국 런던마임축제와 함께 세계 3대 마임축제로 불립니다. ‘춘천인형극제’도 국내외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인형극 축제로 성장했습니다.

오랜 세월 여러 이름을 지나온 춘천은 이제 강원의 중심에서 세계와 만나는 도시가 됐습니다.

야간 야외무대에서 공연자와 관객이 함께 물을 뿌리며 즐기는 춘천마임축제 현장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춘천마임축제 │ 출처: ⓒ한국관광공사(공공누리 제3유형)

춘천의 옛 이름과 역사를 만날 곳

국립춘천박물관

춘천을 비롯한 강원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역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토기와 석기, 불교문화재 등 시대별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글에서 소개한 춘천의 옛 이름들이 실제 유물과 함께 더욱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공공누리 제3유형)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우석로 70
  • 관람: 화요일~일요일 09:00~18:00, 무료
  • 문의: 033-260-1500
  • 홈페이지: 춘천국립박물관

봉의산성

봉의산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으로, 정확한 축조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7세기 이후 신라가 쌓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고려시대에는 외적의 침입에 맞서 춘천 주민들이 항전한 장소로 기록됐습니다. 성벽 대부분은 무너졌지만 일부 석축과 복원 구간이 남아 있습니다.

봉의산성
출처: 강원특별자치도(공공누리 제1유형)
  •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소양로1가 산 1-1 일원
  • 안내: 춘천 봉의산성

위봉문과 조양루

두 건물은 1646년 춘천 관아의 문소각과 함께 세워진 문과 문루입니다. 1888년 춘천유수부가 설치되고 문소각이 이궁으로 확장되면서 왕의 피난처를 지키는 출입문이 됐습니다. 이궁의 다른 건물들은 사라졌지만 위봉문과 조양루는 남아 당시 춘천의 위상을 전합니다.

위봉문 정면 모습
출처 : ⓒ한국관광공사(공공누리 제3유형)
  •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중앙로 1, 강원특별자치도청 입구
  • 안내: 위봉문 · 조양루

춘천향교

조선시대 춘천 지역의 유학교육과 제사를 담당했던 공간입니다.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520년에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는 공부하던 명륜당과 공자와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등이 남아 있습니다. 주소가 ‘삭주로 21’이어서 통일신라시대 춘천의 이름이 오늘의 도로명에 남아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춘천향교 건물 모습
출처 : ⓒ한국관광공사(공공누리 제3유형)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삭주로 21
  • 관람: 무료(내부 출입은 행사와 관리 사정에 따라 제한될 수 있음)
  • 안내: 춘천향교

한량 아빠 추천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춘천의 오랜 역사를 먼저 살펴보세요. 박물관은 시내 중심부에서 다소 떨어져 있어 차로 10분 정도 이동해 위봉문과 조양루로 향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이후 도청 뒤편의 봉의산성까지는 도보로 오를 수 있는 거리이니, 차를 세워둔 채 걸어서 시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 보세요. 가까운 춘천향교까지도 도보로 충분히 연결되니, 도로명에 남은 ‘삭주’도 놓치지 마세요.

참고 자료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