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한민국 수도의 이름은 누가 정했을까?

지명으로 다시 보는 대한민국
서울, 위례성에서 한양, 경성을 지나 오늘의 서울까지

불빛으로 서울 글자를 그리는 사람들

서울은 2천 년이 넘은 도시입니다. 그런데 ‘서울’이라는 공식 이름은 이제 겨우 여든 살입니다.

도시의 이름에는 그 땅이 지나온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지명으로 다시 보는 대한민국’ 첫 번째 이야기는 서울 이름의 변천사를 따라 위례성·한성·한양·경성을 거쳐 오늘의 서울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봅니다.

‘서울’이 여든 살이라고?

“서울이라는 이름은 80년밖에 안 됐다”는 말은 조금 이상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서울이라 불렀으니까요. 비밀은 ‘말의 나이’와 ‘공식 도시명의 나이’가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서울이라는 말은 오래됐지만, 이 도시의 행정명이 된 것은 1946년입니다.

광복 직후에는 서울, 경성, 한성이라는 이름이 한동안 뒤섞여 쓰였습니다. 그러다 1946년 8월 ‘서울시’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9월 28일 시행된 군정법률 제106호에 따라 경기도에서 분리된 특별시가 됐습니다. 이때 이름은 지금과 조금 다른 ‘서울특별자유시’였습니다.

‘자유’가 빠지고 지금의 ‘서울특별시’가 된 것은 1949년입니다. 그래서 2026년은 서울이라는 이름이 공식 도시명으로 자리 잡은 지 꼭 80년이 되는 해입니다. 도시의 세월에 비하면 꽤 젊은 이름이지요.

서울 이름의 변천사, 서울시헌장 표지와 첫장 이미지
<서울시헌장> 영문공포문 표지 및 내용(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출처 : 서울역사편찬원)

잠깐, 옛날에는 경주도 ‘서울’이었다

옛사람에게 서울은 오늘날의 ‘수도’와 비슷한 말이었습니다. 왕조가 바뀌고 임금이 머무는 곳이 달라지면 서울도 함께 움직였습니다. 신라 때는 서라벌이 서울이었고, 고려 때는 개경이 서울이었습니다. 조선의 한양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서울이라 부른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서울’의 뿌리는 흔히 신라의 수도를 가리키던 서라벌·서벌·서나벌 같은 말에서 찾습니다. 다만 긴 세월 동안 소리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서울에는 딱 맞는 공식 한자 이름도 없습니다. 한자로 주소를 쓸 때조차 ‘서울特別市’처럼 서울은 한글로 남습니다. 중국어의 ‘首尔’은 중국어권에서 소리를 옮겨 적은 이름일 뿐, 서울의 한자명이 따로 생긴 것은 아닙니다.

서울은 몇 번이나 이름을 바뀌었을까?

1. 위례성·한성 – 백제의 수도로 시작된 서울의 첫 이름

서울 이름의 변천사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을 따라가면 백제의 위례성과 한성을 만납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 위례성을 도읍으로 삼았으며, 오늘날에는 송파구 풍납토성을 하남위례성의 중심지로 보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몽촌토성도 한성 도읍 체제를 이루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위례성은 뒤에 한성으로 불렸고, 한성은 ‘큰 성’을 뜻하는 이름으로 풀이됩니다.

백제는 475년 웅진 천도 전까지 약 500년 동안 한강 유역에서 성장했고, 이를 ‘한성백제’라 부릅니다. 다만 옛 지명의 범위는 오늘날 서울시 경계와 같지 않습니다.

한강변 풍납토성 일대 항공 전경과 토성 성벽
풍납토성 유적 사진 (출처 : 국가유산포털)

2. 한산주·한주·한양군 – 익숙한 ‘한양’의 첫 등장

475년 이후 고구려와 신라를 거치며 이름과 행정구역이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신라는 신주·북한산주·한산주 등을 두었고, 757년 지금의 서울 지역에 한양군을 설치했습니다.

여기서 ‘한양’이 처음 등장합니다. 하지만 조선의 수도가 아니라 한주에 딸린 지방 도시였습니다. 같은 이름이지만 도시의 위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1916년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옛 사진과 비봉의 복제비
북한산진흥왕순수비.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영토를 순행한 사실을 기념해 세운 비석이다. 현재 비봉에는 복제비가 있으며,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사진 왼쪽: 북한산비봉진흥왕순수비(1916, 서울역사아카이브) / 오른쪽: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복제비(출처: 내 손안에 서울)

3. 양주·남경·한양부 – 한때는 고려의 남쪽 수도

고려는 940년 한양군을 양주로 고치고, 1067년 남경으로 승격했습니다. 서경 평양, 동경 경주와 함께 고려의 세 수도 중 남쪽 수도였습니다.

남경의 지위는 오르내렸지만 고려 왕들은 이곳을 꾸준히 주목했습니다. 1308년 한양부가 됐고, 고려 말에는 천도도 시도됐습니다. 조선의 한양 천도는 이 오랜 관심의 연장선이었습니다.

4. 한양 – 조선 왕조의 수도가 되다

경복궁과 광화문을 중심으로 바라본 서울 도심 전경

1394년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겼습니다. 왕조가 바뀌면서 나라의 중심도 새로 세우려 한 것입니다.

조선은 한양에 경복궁을 짓고, 종묘와 사직을 세웠습니다. 관청과 시장을 배치하고 성곽으로 도시를 둘러싸면서 한양은 조선의 정치와 행정이 모이는 수도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듬해 공식 행정명은 ‘한성부’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한양과 서울이라는 이름도 함께 사용했습니다. 한성부가 행정을 위한 공식 명칭이었다면, 한양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익은 도시의 이름이었습니다.

5. 경성부(게이조) – 나라 잃은 수도의 ‘창씨개명’?

1910년 한성부는 경성부로 바뀌고 경기도 아래에 놓였습니다. 조선왕조의 수도였던 한성부가 경기도 산하의 경성부로 격하된 것입니다. 이름뿐 아니라 도시의 지위도 달라졌습니다.

‘경성’은 이전에도 수도를 뜻했지만, 일제강점기 공식 도시명이 되고 일본어로 ‘게이조’라 불리면서 식민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1925년 전차가 오가는 경성부 소공동 거리
1925년 경성시가.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6. 마침내 ‘서울특별시’가 되다

광복 뒤 한성이나 한양 대신,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불러온 우리말 ‘서울’을 공식 이름으로 택했습니다.

1946년 서울특별자유시로 경기도에서 분리됐고, 1949년 서울특별시가 됐습니다. 수도를 따라 움직이던 말 ‘서울’이 한 도시의 고유한 이름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오늘날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며, 세계 각국의 사람과 자본, 문화가 모이는 글로벌 도시입니다. 수도를 뜻하던 우리말 ‘서울’은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시의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밤에 조명을 밝힌 서울 글자 조형물

서울 이름의 변천사 연표

시대 연도 이름 의미와 변화
백제 기원전 18년~475년 위례성·한성 백제가 한강 유역에 도읍을 두며 서울 일대가 초기 수도 공간으로 자리 잡음
고구려 475~551년 남평양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이 일대를 남평양이라 불렀다고 전해짐
신라·고려 초기 553~940년 한산주·한주·한양군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행정구역을 정비하며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뀜
고려 940~1394년 양주·남경·한양부 고려시대 서울 일대의 행정적 위상 변화에 따라 이름이 달라짐
조선 1394~1910년 한양·한성부 조선의 수도가 되며 한양, 한성부라는 이름이 대표적으로 사용됨
일제강점기 1910~1945년 경성부(게이조) 일제강점기 조선의 중심 도시였으며 행정명은 경성부로 바뀜
광복 이후 1946년~현재 서울특별자유시·서울특별시 광복 이후 서울이라는 이름이 공식 행정명으로 자리 잡고 오늘의 서울특별시로 이어짐

※ ‘남평양’은 고구려 시기 서울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전해지지만, 당시의 공식 행정명이라기보다 후대 기록에 보이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름 뒤의 한 글자가 도시의 체급을 말해준다

위례성, 한양군, 남경, 한성부, 경성부, 서울특별시. 이름만 보면 복잡하지만 뒤에 붙은 ‘군·경·부·시’를 살펴보면 흐름이 의외로 선명해집니다.

  • 한양군의 ‘군’은 이곳이 통일신라의 지방 군현이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 남경의 ‘경’은 이곳이 고려 삼경 가운데 하나였음을 나타냅니다.
  • 한성부의 ‘부’는 조선 수도의 행정구역이자 이를 관할한 관청을 가리킵니다.
  • 경성부는 중앙 직할지였던 한성부가 경기도 산하 도시로 낮아진 변화를 담고 있습니다.
  • 서울특별자유시와 서울특별시는 서울이 경기도에서 분리돼 특별한 행정 지위를 되찾았음을 보여줍니다.

서울 이름의 변천사는 단순한 개명 기록이 아닙니다. 지방 군현이었던 한양군이 고려의 남경과 한양부, 조선의 한성부를 거쳐 일제강점기 경성부로 격하되고, 광복 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로 다시 자리 잡는 과정이 이름 속에 담겨 있습니다.

야간 조명을 밝힌 경복궁 광화문

서울의 옛 이름을 만나러 가볼 만한 곳

이름의 역사는 땅 위에 서 보면 훨씬 또렷해집니다. 서울의 유명 관광지를 늘어놓기보다, 위례성·한성부터 한양·경성·서울까지 서울 이름의 변천사와 연결되는 네 곳을 골랐습니다.

1. 풍납토성·몽촌토성·한성백제박물관 | 위례성·한성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을 만나려면 송파구로 가보세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은 위례성, 곧 한성시대 왕성의 유력한 중심지입니다. 두 토성의 서로 다른 지형을 비교해 걷는 재미가 있습니다.

몽촌토성 안 한성백제박물관에서는 백제 왕도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왕성의 정확한 위치와 두 토성의 역할은 연구 중이니, 오래된 수도를 상상하며 걸어보세요.

방문 전 확인 | 한성백제박물관은 2026년 5~11월 전시실 개편 공사가 진행 중이므로 공식 누리집에서 관람 가능한 전시를 확인하세요.

서울 송파구 한성백제박물관 건물 전경

서울시 송파구 위례성대로 71(방이동 88-20) 한성백제박물관
Tel : 02-2152-5800
https://www.baekjemuseum.seoul.go.kr/

2. 한양도성 낙산구간·한양도성박물관 | 한양·한성부

조선의 한양과 한성부를 느끼기에는 한양도성이 좋습니다. 처음이라면 혜화문에서 낙산공원·한양도성박물관을 거쳐 흥인지문으로 내려오는 낙산구간을 추천합니다.

성벽 안이 조선의 수도였음을 떠올리며 돌의 크기와 쌓은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세요. 여러 차례 고쳐 쌓은 흔적에 한성부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한양도성박물관 입구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283 1~3층 한양도성박물관
Tel : 02-724-0243
https://museum.seoul.go.kr/scwm/NR_index.do

3. 문화역서울284 | 경성에서 서울로

문화역서울284는 ‘경성’에서 ‘서울’로 바뀐 흔적을 보여줍니다. 1925년 경성역사로 문을 열고, 광복 뒤인 1947년 서울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전시나 공간 투어가 열리면 옛 대합실과 귀빈실도 볼 수 있습니다.

방문 전 확인 | 내부 관람 범위는 전시와 프로그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옛 서울역사 건물을 활용한 문화역서울284 정면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 1 서울역(본옥) 문화역서울284
Tel : 02-3407-3500
https://www.seoul284.org/main

4. 서울역사박물관 | 한양·경성·서울을 한 번에

여러 시대를 한 번에 보고 싶다면 서울역사박물관이 좋습니다. 조선의 한양·한성부, 일제강점기의 경성, 해방 뒤 서울을 옛 지도와 도시 모형으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한양도성이나 경복궁을 걷고 들르면, 방금 지나온 길이 옛 지도에서 어디였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석인상과 소나무가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입구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서울역사박물관
Tel : 02-724-0274~6
https://museum.seoul.go.kr/

한량아빠 추천 동선

하루에 네 곳을 모두 보려 하기보다 시대별로 나눠 걷는 편이 좋습니다. 백제의 서울은 ‘풍납토성 → 몽촌토성 → 한성백제박물관’, 조선의 서울은 ‘혜화문 → 낙산공원 → 한양도성박물관 → 흥인지문’으로 묶으면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문화역서울284와 서울역사박물관은 근현대 서울을 살펴보는 별도 하루로 잡아도 좋습니다.

주요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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