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으로 다시 보는 대한민국 ④
섬나라 탐라가 세계적인 관광지 섬이 되기까지

삼다도. 바람과 돌, 여자가 많다고 해서 붙은 제주의 오래된 별명입니다. 한라산과 오름, 검은 돌담과 해녀처럼 제주를 떠올리게 하는 말은 많습니다. 하지만 ‘제주’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건널 제(濟), 고을 주(州). 한자의 뜻을 따라 풀면 ‘바다 건너 있는 고을’입니다. 이 이름은 섬 안보다 육지에서 바다 너머 제주를 바라본 시선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 섬이 처음부터 제주였던 것은 아닙니다. 제주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훨씬 전, 이곳에는 ‘탐라’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나라의 이름이었던 탐라는 어떻게 고을의 이름인 제주가 되었을까요? 이번 이야기는 탐라에서 오늘의 제주까지, 제주 이름의 변천사 뒤에 겹겹이 쌓인 섬의 시간을 따라갑니다.
1. 탐라 — 섬나라의 시작
제주에는 땅에서 솟아난 세 사람이 삶의 터전을 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고을나·양을나·부을나가 삼성혈(三姓穴)에서 나왔고, 바다 건너온 세 공주와 혼인해 오곡을 심고 가축을 길렀다는 삼성신화입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고려사』 지리지는 ‘고기’를 인용해 이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날에는 고·양·부 세 씨족의 연합을 상징적으로 담은 이야기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 섬이 탐라라고 불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삼국사기』에는 476년 탐라국이 백제에 토산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기록으로 확인되는 탐라는 적어도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땅속에서 확인된 탐라의 시작 기원후 2세기 전후, 제주 전역에서 같은 양식의 토기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던 마을들이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훗날 섬 전체를 아우르는 탐라 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해석됩니다.

탐라는 무슨 뜻일까?
옛 기록에는 탐라뿐 아니라 탐모라·섭라·탁라·담라처럼 여러 이름이 등장합니다. 서로 다른 지역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제주 고유의 이름을 여러 한자로 옮겨 적은 것으로 이해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은 ‘섬나라’입니다. ‘탐’을 섬, ‘라’를 나라로 풀이한 것입니다. 『고려사』에는 탐라 사람들이 신라로 가는 길에 탐진에 닿은 데서 이름이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정확한 어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탐라가 오랫동안 이 섬과 그곳의 나라를 가리킨 이름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2. 탐라국에서 탐라군으로 — 나라가 고을이 되다
기록에 모습을 드러낸 탐라는 백제·신라와 관계를 맺으면서도 오랫동안 독자적인 정치체를 유지했습니다. 주변의 강한 나라에 공물을 보내기도 했지만, 탐라국이라는 이름과 자체 지배체제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938년 태자 말로가 고려 조정에 들어가 태조를 알현했습니다. 고려는 탐라의 지배층에 성주·왕자라는 작위를 인정했습니다. 탐라는 고려에 복속해 조공을 바쳤지만, 토착 지배체제와 일정한 자치권은 계속 유지했습니다.

큰 변화는 1105년에 일어났습니다. 고려가 탐라를 지방행정구역인 ‘탐라군’으로 편입하면서 탐라는 독립된 나라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고려 의종 때에는 현령이 파견되면서 중앙의 직접 지배도 본격화됐습니다.
그렇다고 탐라의 옛 질서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성주와 왕자는 토착 지배자의 칭호로 남았고, 이들이 지역 사회에서 지닌 권위도 조선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3. 제주 — 바다 건너 있는 고을
13세기에 들어서면 ‘제주(濟州)’라는 이름이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1229년 『고려사』에는 송나라 상인이 제주 출신 표류민 28명을 데리고 왔다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현존 기록에서 제주라는 지명이 처음 확인되는 사례입니다.
다만 이 이름이 공식적인 행정구역의 명칭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1273년 제주에서 삼별초 항쟁이 끝난 뒤 제주는 원의 직접 지배 아래 놓였고, 1277년에는 목마장이 설치됐습니다. 1294년 충렬왕이 원에 탐라를 돌려달라고 요청하면서 탐라는 다시 고려에 속하게 됐습니다.
『고려사』 지리지는 이듬해인 1295년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제주로 고치고 목사를 파견했다고 기록했습니다. 13세기 전반부터 쓰이던 제주라는 이름이 이때 행정구역의 명칭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탐라에서 제주로 탐라가 섬 안에서 이어온 나라의 이름이었다면, 제주는 고려의 행정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탐라에서 제주로의 변화는 단순한 개칭이 아니라 섬의 정치적 지위가 나라에서 고려의 한 고을로 바뀌었음을 보여줍니다.
4. 제주목·정의현·대정현 — 한라산을 중심으로 셋이 되다
조선시대에 들어 제주를 다스리는 기본 틀이 만들어졌습니다. 1416년 조정은 한라산을 경계로 북쪽에 제주목을 두고, 남쪽은 동쪽의 정의현과 서쪽의 대정현으로 나눴습니다. 이른바 제주 3읍 체제입니다.
제주목의 중심은 지금의 제주목관아 일대였습니다. 정의현의 중심은 처음에는 성산읍 고성리에 있다가 지금의 성읍민속마을로 옮겨졌고, 대정현의 중심은 현재의 대정읍 보성리 일대에 있었습니다.
한라산은 섬 한가운데 솟은 산인 동시에 행정구역을 나누는 기준이었습니다. 제주 곳곳에 남은 읍성과 관아는 이 3읍 체제가 오랫동안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나뉜 행정구역 위에도 옛 3읍의 구획이 희미하게 겹쳐 보입니다.

5. 제주도 — 섬 도(島)에서 행정구역 도(道)로
오늘날 우리가 자연스럽게 쓰는 ‘제주도’에는 서로 다른 두 뜻이 겹쳐 있습니다. 제주도(濟州島)는 섬이고, 제주도(濟州道)는 행정구역입니다. 발음은 같지만 마지막 한자가 다릅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는 제주군의 군제가 폐지되고 제주도(濟州島)에 도사제(島司制)가 실시됐습니다. 이때의 ‘도’는 행정구역 도(道)가 아니라 섬 도(島)였습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8월 1일, 제주는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제주도(濟州道)로 승격됐습니다. 이때부터 제주도는 섬의 이름인 동시에 광역행정구역의 이름이 됐습니다.
6. 제주특별자치도 — 세계를 향한 이름
제주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성장한 가장 큰 힘은 한라산과 오름, 용암동굴과 바다가 어우러진 독특한 자연환경이었습니다. 여기에 1960년대부터 관광지 개발이 본격화되고 도로와 공항 같은 기반시설이 갖춰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제주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대표적인 신혼여행지로 인기를 얻으며 ‘관광 제주’의 이미지가 자리 잡았습니다.

2002년에는 국제 교류와 관광을 확대하기 위한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시행됐습니다. 섬을 넘어 세계와 연결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2006년 7월 1일에는 제주도가 대한민국 최초의 특별자치도인 제주특별자치도로 출범했습니다. 기존의 제주시와 북제주군은 새로운 제주시로,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은 새로운 서귀포시로 통합됐습니다. 현재 두 도시는 기초자치단체가 아니라 제주특별자치도에 속한 행정시입니다.

‘특별자치도’라는 이름에는 제주만의 역사와 지리적 특성을 살리고 더 넓은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섬나라 탐라에서 고려의 고을 제주로, 다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특별자치도로. 이름은 달라졌지만, 바다가 만든 제주의 독특한 정체성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주 이름의 변천사 연표
| 시대 | 연도 | 이름 | 의미와 변화 |
|---|---|---|---|
| 탐라국 | 2세기 전후 | 탐라 형성기 | 섬 전역에서 비슷한 문화 양식이 나타나며 탐라 사회가 형성되는 기반 마련 |
| 476년 | 탐라국 | 『삼국사기』에 백제에 토산물을 바친 나라로 기록 | |
| 938년 | 탐라 | 고려와 조공·책봉 관계를 맺으며 독자적인 체제를 한동안 유지 | |
| 고려 | 1105년 | 탐라군 | 고려의 지방행정구역으로 편입 |
| 1229년 | 제주 | 『고려사』 기사에서 ‘제주’ 명칭이 확인되는 이른 사례 | |
| 1273~1294년 | 탐라 | 삼별초 항쟁 뒤 원이 직접 관할했으며 1294년 고려에 환부 | |
| 1295년 | 제주 | 공식적으로 제주로 이름을 고치고 목사를 파견 | |
| 조선 | 1416년 | 제주목·정의현·대정현 |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 3읍 체제 실시 |
| 일제강점기 | 1915년 | 제주도(濟州島) | 제주군 군제를 폐지하고 도사제를 실시 |
| 대한민국 | 1946년 | 제주도(濟州道) |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광역행정구역인 도로 승격 |
| 2006년 | 제주특별자치도 | 제주시·서귀포시의 2개 행정시 체제로 출범 |
※ 1229년 『고려사』 기사에는 ‘제주도 백성’이라는 표현이 확인됩니다. 『고려사』 지리지는 1295년 공식적으로 제주로 이름을 고친 것으로 기록합니다.
※ 원이 직접 관할하던 시기에는 탐라국초토사·탐라총관부 등 관청의 명칭에 ‘탐라’가 사용됐습니다.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 제주4·3
제주가 도로 승격된 이듬해인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행사 뒤 경찰 발포로 주민 6명이 숨졌습니다. 이후 총파업과 검거·탄압이 이어졌고, 단선·단정 반대 움직임 속에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경찰지서 등을 공격하며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이어진 무장대와 토벌대의 충돌,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됐습니다. 제주4·3은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늘의 제주 — 대한민국의 섬을 대표하는 이름
제주는 대한민국의 섬과 자연을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제주’라는 두 글자만으로 한라산과 오름, 돌담과 바다, 해녀가 함께 떠오를 만큼 하나의 지역명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습니다.
제주의 위상은 유명 관광지라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제주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과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고,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제주 해녀문화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화산이 만든 자연과 그 환경에 적응해 살아온 사람들의 문화가 함께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한때 제주는 육지에서 바라본 ‘물 건너 있는 고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제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행지이자 한국의 섬과 자연을 상징하는 이름이 됐습니다. 섬나라 탐라의 이름은 사라졌지만, 그 섬의 역사와 문화는 오늘의 제주 안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주의 이름과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
1. 국립제주박물관

선사시대부터 탐라국, 고려와 조선, 제주 사람들의 생활문화까지 한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주 여행을 시작하며 섬의 전체 역사를 먼저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곳입니다.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주동로 17
- 관람시간: 화~일요일 09:00~18:00, 입장 마감 17:3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 전화: 064-720-8000
- 홈페이지: 국립제주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2. 삼성혈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세 신인이 솟아났다는 탐라 건국신화의 무대입니다. 실제 역사의 출발점이라기보다 제주 사람들이 자신의 기원을 기억해 온 상징적인 장소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성로 22
- 관람시간: 매일 09:00~18:00, 매표 마감 17:30
- 휴무: 연중무휴. 1월 1일·설날·추석은 10:00 개장
- 전화: 064-722-3315
- 홈페이지: 삼성혈 공식 홈페이지
3. 제주목관아·관덕정
고려와 조선시대 제주 행정의 중심지입니다. 제주목사가 업무를 보던 관아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관덕정을 함께 둘러볼 수 있습니다.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 25
- 관람시간: 매일 09:00~18:00, 입장 마감 17:30
- 휴무: 연중무휴
- 전화: 관덕정 064-710-6717 / 제주목관아 064-710-6718
- 홈페이지: 제주목관아 공식 홈페이지
4. 성읍민속마을
조선시대 정의현의 중심지였던 마을입니다. 객사와 향교, 성곽의 흔적, 제주 초가와 돌담을 통해 행정 중심지와 주민들의 생활공간이 어떻게 어우러졌는지 볼 수 있습니다.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3294
- 관람시간: 마을 상시 개방
- 해설시간: 대체로 10:00~17:00, 계절별 변동 가능
- 전화: 064-710-6797
- 홈페이지: 성읍민속마을 공식 홈페이지
5. 제주4·3평화공원
제주4·3의 전개와 피해, 진상규명 과정을 살펴보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입니다. 전시를 충분히 보려면 적어도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를 잡는 것이 좋습니다.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430
- 평화기념관: 09:00~18:00, 입장 마감 17:00
- 기념관 휴관일: 매월 첫째·셋째 월요일. 공휴일이면 다음 첫 비공휴일
- 전화: 064-723-4301~2, 064-723-4344
- 홈페이지: 제주4·3평화재단 공식 홈페이지
한량아빠 추천 동선
하루에 다섯 곳을 모두 둘러보기보다 지역과 시대별로 나눠 보는 편이 좋습니다. 탐라와 조선시대 제주는 위 동선으로 묶으면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제주4·3평화공원은 전시 관람 시간을 넉넉히 잡고, 성읍민속마을은 성산일출봉과 함께 제주 동부 일정으로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476년 탐라국 기사
-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938년 탐라국 태자 말로 입조
-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고려사』 지리지 탐라현
-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1229년 제주도 표류민 기사
- 국가법령정보센터, 「제주도의설치」
-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이란
- UNESCO World Heritage, 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
※ 관람시간과 휴관일은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각 장소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