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으로 다시 보는 대한민국 ⑨
매홀에서 수원으로, 이름 속 ‘물’을 따라온 오래된 흔적

수원은 경기도의 대표적인 대도시입니다. 오래된 성곽과 신도시가 함께 있고, 행정·산업·생활의 중심지로도 익숙합니다. 정조가 만든 계획도시, 수원갈비 같은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런데 도시 이름 자체를 들여다보면 조금 의외입니다.
수원(水原).
한자 그대로 풀면 ‘물의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수원을 떠올리면 이 이름이 선뜻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바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시를 대표할 만한 큰 강이 흐르는 것도 아닙니다.
수원은 처음부터 물과 관련된 이름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느 순간 특별한 이유로 ‘물’을 품게 된 걸까요?
대한민국 도시의 이름을 하나씩 따라가고 있지만, 수원은 유독 이름과 도시의 특색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수원 이름 유래를 따라가며, 왜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1. 물의 들판, 모수국
수원 이름의 시작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까요? 이름이 문서에 또렷하게 등장하는 건 고구려 때부터지만, 그보다 앞선 마한 시절에도 이 일대에 작은 나라가 있었다고 봅니다. 마한 54개 소국 가운데 하나인 ‘모수국(牟水國)’입니다.
수원시는 이 ‘모수’를 우리말 ‘벌물’, 곧 들판의 물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수원(水原)의 原을 ‘벌(들판)’이라고 새겨 읽으면 ‘물벌’이 됩니다.
벌물과 물벌. 글자 순서만 뒤집으면 같은 말입니다.
물론 모수국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모수’를 그렇게 읽는 게 맞는지는 어디까지나 추정입니다. 하지만 이 풀이가 맞다면 수원의 이름은 아주 오래전부터 물과 함께 시작된 셈입니다.
다만 학계에서는 모수국을 오늘날의 수원·화성에 비정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고, ‘모수’를 ‘벌물’로 읽는 해석 역시 확실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2. 물의 성, 매홀
기록으로 확실하게 만나는 첫 이름은 고구려 때의 ‘매홀(買忽)’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이 지역이 본래 고구려의 ‘매홀군’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매(買)’는 물을, ‘홀(忽)’은 골, 곧 고을을 뜻하는 말로 풀이됩니다. 그러니 매홀은 ‘물골’, ‘물고을’쯤 되는 이름입니다.
757년 신라 경덕왕이 지방 군현의 이름을 중국식 한자 지명으로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매홀군’은 ‘수성군(水城郡)’으로 바뀌었습니다.
‘매홀’은 고구려의 말을 한자의 소리로 적은 이름이고, ‘수성’은 그 뜻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름은 달라졌지만, 이름 속 ‘물’의 의미는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살 매(買)’ 자가 들어 있다고 장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시절에는 한자의 뜻이 아니라 소리를 빌려 우리말 이름을 적는 일이 많았습니다. 買도 ‘사다’라는 뜻이 아니라 ‘매’라는 소리를 적으려고 빌려 온 글자로 여겨집니다.

3. 그런데, 왜 ‘물’이었을까?
모수국의 ‘물의 들판’, 매홀과 수성의 ‘물고을’.
왜 이 지역은 계속 ‘물’과 연결된 이름을 가졌을까요?
지금의 수원만 떠올리면 조금 이상합니다. 바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시를 대표할 만큼 큰 강이 흐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옛 수원의 위치를 알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정조 이전 수원부의 중심은 지금의 수원시가 아니라 현재의 화성시 융건릉 일대에 있었습니다. 당시 수원부는 지금의 수원시보다 훨씬 넓어서, 현재의 화성·오산과 평택 일부까지 아우르는 큰 고을이었습니다.
1789년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으로 옮기면서 수원부의 행정 중심도 팔달산 아래로 옮겨졌고, 그 뒤 지금의 수원 중심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수원은 생각보다 뒤에 자리 잡은 도시인 셈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물과의 연결은 한층 자연스러워집니다. 수원시의 지명유래 자료에서는 약 2천 년 전 지금의 화성 서쪽 상당 부분이 바다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닷물이 빠진 뒤에는 호수와 웅덩이가 많은 땅이 남았을 가능성도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수원만 보고 있으면 낯설었던 ‘물고을’이라는 이름이, 옛 수원의 위치와 지형을 함께 놓고 보면 꽤 그럴듯해집니다.
어떻게 해서 처음 ‘물’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자리 잡은 이름의 의미가 얼마나 오래 이어질 수 있는지는 잘 보여줍니다.
4. 드디어 ‘수원’이 되다
신라 때의 ‘수성(水城)’은 고려에 들어와 다시 이름이 바뀝니다.
940년 고려 태조는 이곳을 ‘수주(水州)’로 고쳤습니다. ‘성(城)’이 ‘주(州)’로 바뀌었지만, 앞의 ‘수(水)’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1271년, 수주는 수원도호부로 승격되면서 처음으로 지금과 같은 ‘수원(水原)’이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건 새로 등장한 ‘원(原)’입니다.
수원(水原)을 한자 그대로 보면 흔히 ‘물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수원시와 지역사 자료에서는 조금 다르게 풀이합니다. ‘원(原)’을 ‘근원’이 아니라 ‘벌판, 들’의 뜻으로 보고, 수원을 ‘물벌’, 곧 물과 가까운 너른 들로 해석하는 겁니다.
앞에서 만난 모수국의 ‘모수’는 ‘벌물’로 풀이했었죠.
벌물에서 물벌로.
글자의 순서는 바뀌었지만, 이름 속에 담긴 풍경은 꽤 닮아 있습니다.
다만 1271년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뜻을 생각해 ‘원(原)’을 골랐는지까지 알려주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수원이라는 이름을 단순히 ‘물의 근원’으로만 읽는 것보다, 옛 지형과 오래된 이름을 함께 놓고 보면 훨씬 흥미로운 모습이 보입니다.

5. 사도세자의 묘를 위해 자리를 내준 수원
수원이 팔달산 아래에 새롭게 자리 잡게 된 계기는 뜻밖에도 사도세자의 묘였습니다.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더 좋은 자리로 옮기려 했고, 새 묘자리로 수원부 화산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비어 있는 산자락이 아니었습니다. 화산 아래에는 수원부의 관청과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묘가 들어서면서 수원부의 중심은 팔달산 아래 새 터로 옮겨졌습니다. 1789년의 일입니다.
그렇다고 예전 도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조는 새 수원을 아예 새로운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행궁과 관청을 세우고 도로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을 키우고 둔전과 수리시설도 마련했습니다. 사람이 살기 편하면서 상업과 농업이 함께 돌아가는 도시를 만들려 한 겁니다.
새 수원의 위상도 점점 높아졌습니다.
1793년 수원부는 유수부로 승격되고 ‘화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그다음 해부터 성곽을 쌓기 시작해 1796년에 완성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수원화성입니다.

우리는 ‘수원화성’이라고 하면 먼저 성곽부터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수원이 자리를 옮기면서 새 도시가 만들어지고, ‘화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뒤에 성곽이 들어섰습니다.
수원화성은 오래된 수원에 성 하나를 덧붙인 것이 아니라, 정조가 새롭게 만든 도시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세운 성곽이었던 셈입니다.
사도세자의 묘를 위해 자리를 내준 일이,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수원의 중심을 만들어냈습니다.
6. 수원과 화성, 한 이름에서 갈라지다
정조 시대 수원은 한동안 ‘화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이 이름이 지금의 수원시에 그대로 남은 것은 아닙니다.
1895년 지방제도가 바뀌면서 다시 ‘수원군’이 되었고, 1949년에는 수원군의 중심이던 수원읍이 따로 떨어져 ‘수원시’로 승격됩니다.
그러면서 남은 수원군 지역에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해졌습니다.
수원이라는 이름은 새로 만들어진 수원시가 이어받았고, 주변 지역은 정조 시대에 쓰였던 이름을 되살려 ‘화성군’이 되었습니다. 화성군은 이후 2001년 ‘화성시’로 승격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재미있는 모습이 남았습니다.
‘화성’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성곽은 수원시에 있고, ‘화성’이라는 도시 이름은 바로 옆 화성시에 있습니다.
2022년에는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에 행정·재정상의 특례를 부여하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수원특례시’가 출범했습니다.
매홀에서 시작해 수성, 수주, 수원을 거쳐 잠시 화성으로 불렸던 이름은 결국 다시 ‘수원’으로 돌아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원 이름 유래 연표
| 시대 | 연도 | 이름 | 의미와 변화 |
|---|---|---|---|
| 마한 | 마한 시대 | 모수국(牟水國) | 수원시 자료에서 수원 일대로 비정하며 ‘모수’를 ‘벌물’로 풀이함(추정) |
| 고구려 | 고구려 시대 | 매홀군(買忽郡) | 『삼국사기』에 기록된 옛 이름. ‘매’는 물, ‘홀’은 고을로 풀이됨 |
| 통일신라 | 757년~ | 수성군(水城郡) | 경덕왕의 지명 개편으로 매홀군을 수성군으로 바꿈 |
| 고려 | 940년~ | 수주(水州) | 태조 때 수성군을 수주로 바꿈 |
| 1271년~ |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 | 기록상 ‘수원(水原)’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 | |
| 1308년~ | 수주목(水州牧) | 행정 지위가 높아지며 잠시 ‘수주’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 | |
| 1310년~ | 수원부(水原府) | 다시 ‘수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뀜 | |
| 조선 | 1413년~ | 수원도호부 | 태종 때 수원도호부로 정비됨 |
| 1789년~ | 수원부 | 사도세자 묘 이전을 계기로 행정 중심을 팔달산 아래로 옮김 | |
| 1793년~ | 화성(華城)·화성유수부 | 새 수원을 ‘화성’이라 부르고 유수부로 승격 | |
| 근대 | 1895년~ | 수원군(水原郡) | 지방제도 개편으로 ‘수원’이라는 이름이 다시 행정명에 등장 |
| 일제강점기 | 1914년~ | 수원면(水原面) |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원면이 됨 |
| 1931년~ | 수원읍(水原邑) | 수원면이 수원읍으로 승격 | |
| 대한민국 | 1949년~ | 수원시(水原市) |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되고, 남은 수원군은 화성군으로 개칭 |
| 2022년~ | 수원특례시 |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 특례제 시행으로 특례시 출범 |
세계유산을 품은 수도권 남부의 중심도시
오늘날 수원은 백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 대도시이자 경기도청이 자리한 경기도 행정의 중심입니다. 2022년에는 특례시가 되었고, 네 개 구를 둔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한편 도심 한가운데에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이 남아 있습니다. 18세기 정조가 만든 계획도시의 흔적과 현대적인 대도시의 모습이 한 공간에 겹쳐 있는 셈입니다.
모수국의 ‘벌물’로 시작했을지 모르는 이름은 매홀·수성·수주를 지나 ‘수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름은 오래됐지만, 그 이름 안에 담긴 도시는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AI가 추천하는 수원 역사 여행
1. 화성 융릉과 건릉
정조 이전 수원부의 중심이 있던 화산 일대입니다. 1789년 사도세자의 묘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수원의 중심이 팔달산 아래로 이동했습니다. 지금의 수원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들러볼 만한 곳입니다.

- 주소: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 관람: 2~5월·9~10월 09:00~18:00 / 6~8월 09:00~18:30 / 11~1월 09:00~17:30, 매주 월요일 휴관, 유료
- 문의: 031-222-0142
- 홈페이지: 화성시문화관광
2. 수원향교
수원향교도 도시와 함께 자리를 옮겼습니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향교는 정조의 수원 이전에 맞춰 178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수원이라는 도시가 실제로 ‘이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흔적입니다.

- 주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07-9
- 관람: 09:00~17:00, 무료 ※ 주말 개방 여부는 행사·예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방문 전 확인 권장
- 문의: 031-245-7639
- 홈페이지: 수원향교
3. 화성행궁
팔달산 아래로 옮겨온 새 수원의 중심입니다. 평소에는 화성유수가 업무를 보던 관청이었고, 정조가 수원에 행차했을 때는 임시 궁궐로 쓰였습니다. 정조가 새 수원을 어떤 도시로 만들고 싶어 했는지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 주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 관람: 09:00~18:00, 연중무휴, 유료
- 문의: 031-290-3600
- 홈페이지: 수원관광 화성행궁
4. 수원화성박물관
수원화성을 걷기 전에 들르면 좋은 곳입니다. 화성 축성뿐 아니라 사도세자의 묘 이전, 새 수원 건설, 둔전과 시장까지 정조 시대 수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형과 유물로 볼 수 있습니다.

- 주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
- 관람: 09:00~18:00(입장 17:00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유료
- 문의: 031-5191-4242
- 홈페이지: 수원화성박물관
5. 수원화성
1794년부터 1796년까지 새로 만든 수원을 둘러싸며 축성한 성곽입니다. 오래된 수원에 성을 덧붙인 것이 아니라, 정조가 새로 만든 계획도시의 완성 과정에서 세워졌다는 점을 떠올리며 걸으면 수원화성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 주소: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320-2 일원
- 관람: 개방형 성곽으로 연중 상시 관람 가능
- 문의: 031-290-3600
- 홈페이지: 수원관광 수원화성
AI 추천 동선
수원의 이름과 도시가 움직인 길은 옛 수원과 새 수원, 두 코스로 나눠서 보는 게 좋습니다.
먼저 옛 수원은 융릉과 건릉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정조 이전 수원의 중심이 있던 자리로, 지금은 화성시에 있어요. 수원 도심과 떨어져 있으니 따로 반나절을 잡고 다녀오세요.
새 수원은 1789년 옮겨온 수원의 중심입니다. 수원향교에서 시작해 화성행궁, 수원화성박물관, 수원화성 순으로 이어서 걸으면 좋습니다. 박물관에서 도시가 만들어진 과정을 먼저 보고 성곽을 걸으면 더 잘 보입니다.
장소마다 휴관일이 다르니, 방문 전에 꼭 확인하고 일정을 짜세요.
참고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지리지 「수성군」
- 수원특례시, 「수원시 유래와 역사」
- 수원특례시, 「수원의 어원 – 물[水]에서 비롯된 이름」
- 수원특례시, 「수원지역의 첫 이름, 모수국」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원시」
- 이상신, 「마한(馬韓)의 지명 ‘牟水國’에 대한 두 가지 의문」, 『방언학』 14, 2011
- 수원화성박물관, 「화성축성실」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Hwaseong Fortress」
- 궁능유적본부, 「화성 융릉과 건릉」 관람안내
- 수원시 평생학습관, 「수원향교」
- 수원관광, 「화성행궁」
- 수원관광, 「수원화성」
- 수원화성박물관, 「관람안내」
- 수원특례시, 공무원 1인당 주민수(주민수 1,252,873명, 2026.9.15 수정)
- 경기도청, 경기도청 소재지(수원시 영통구 도청로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