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으로 다시 보는 대한민국 ⑧
완산에서 전주로, 같은 뜻을 이어온 천 년의 이름

전주 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기와지붕이 이어진 전주 한옥 마을, 정갈하게 담긴 전주비빔밥, 뜨끈한 콩나물국밥…
경기전과 전동성당, 골목마다 이어지는 고풍스러운 풍경도 전주를 대표합니다.
전주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거예요. 완산구, 완산칠봉, 완산교처럼 도시 곳곳에 ‘완산’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는 걸요. 전주와 완산 이 둘은 어떤 사이일까요?
사실 이 둘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두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온전한 땅 ‘온다라’라는 낯선 말을 만나게 됩니다.
‘온전한 땅’. 이 한마디가 완산이 되고, 전주가 되고, 완주가 되고, 전라도라는 이름에까지 흔적을 남겼습니다. 천 년 넘게 온전한 땅의 의미를 지킨 전주 이름 유래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전주의 첫 이름, 원지국?
전주의 가장 오래된 이름을 찾으려면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전주시가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이름은 ‘원지국(圓池國)’입니다. 다만 ‘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이 지금의 전주 지역이었다는 견해도 있어서,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삼국사기』에는 온조왕 9년인 서기 27년, 백제가 마한 세력이 남아 있던 ‘원산성(圓山城)’을 함락시켰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이 원산성을 지금의 전주와 연결하는 해석도 있지만, 위치가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삼국시대 이전 전주를 어떤 이름으로 불렀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여러 이름이 엇갈리다가, 백제 시대에 들어서면 비로소 ‘완산(完山)’이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등장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는 이름입니다.
전주에 사람이 산 건 언제부터일까?
전주 송천동에서는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됐습니다.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점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셈입니다.
2. 완산, “온전한 땅”이라는 이름을 갖다.
『삼국사기』를 보면 백제 시대 이 땅은 ‘완산(完山)’이라 불렸습니다. 확실하게 “이 이름이 이 자리의 지명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첫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완(完)’이라는 글자에는 재미있는 풀이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전주에서는 완산과 전주의 이름 뿌리를 ‘온다라’라는 말과 연결해 설명합니다. 여기서 ‘온’은 모두·완전함을 뜻하는 우리말이고, ‘다라’는 고대 지명에서 땅이나 들, 나라를 뜻하는 말과 연결해 풀이되기도 합니다. 이를 합치면 ‘온다라’는 ‘온전한 땅’ 또는 ‘온전한 고을’ 정도의 뜻이 됩니다.
완산의 ‘완(完)’, 그리고 훗날 전주의 ‘전(全)’은 모두 ‘온전하다’는 뜻을 가진 한자입니다. 글자는 달라졌지만 이름에 담긴 뜻은 그대로 이어진 셈입니다.
재밌는 건 이 ‘온’이라는 풀이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주시의 지명 해석에서는 원산성의 ‘원(圓)’, 온조왕의 ‘온(溫)’, 백제의 ‘백(百)’까지도 같은 ‘온’의 계열로 설명합니다. 이 풀이를 따르면 완산과 전주, 심지어 백제라는 이름까지 하나의 뜻으로 이어지는 셈이에요.

완산이 비사벌?
『삼국사기』에는 완산을 ‘비사벌(比斯伐)’ 또는 ‘비자화(比自火)’라고도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비사벌과 비자화는 지금의 경남 창녕 지역 이름으로도 등장합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전주와 창녕의 옛 지명이 기록 과정에서 뒤섞였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3. 완산주, 신라 9주의 하나가 되다
백제가 무너지고 이 땅이 신라로 넘어간 뒤, 685년 신문왕 5년에 완산주가 세워집니다. 용원(龍元)이라는 사람이 첫 총관으로 왔죠.
이때부터 완산의 위상이 확 달라집니다. ‘주(州)’는 지금으로 치면 도(道)급 단위인데, 이걸 설치한다는 건 중앙에서 직접 관리를 보내고 군대까지 주둔시킨다는 뜻이거든요. 신라 9주 가운데 하나가 되면서, 지금의 전북 지역을 총괄하는 행정 중심지가 됐습니다. 완산정(完山停)이라는 군단도 함께 배치됐습니다.
전주가 지금까지 전북의 중심 도시인 이유, 사실 이때 이미 정해진 셈입니다.
사실 이보다 앞선 완산주도 있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555년에 완산주를 설치했다가 565년에 폐지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만 이 완산주를 지금의 전주에 설치된 완산주로 볼 수 있는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백제 멸망 뒤인 685년에 전주 지역에 완산주가 설치됐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4. 완산에서 전주로, 같은 뜻 다른 글자
757년, 통일신라 경덕왕이 전국의 지명을 한자식으로 싹 정비합니다. 이때 완산주는 ‘전주(全州)’가 됐습니다.
여기서 전주만의 특별함이 나옵니다. 같은 해에 바뀐 다른 지명들, 예를 들어 인천의 ‘매소홀’이 ‘소성’이 되고 춘천의 ‘수약주’가 ‘삭주’가 된 건 대체로 원래 소리는 버리고 새 한자 이름을 붙인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전주는 다릅니다. ‘완(完)’을 ‘전(全)’으로 바꾼 건, 같은 뜻의 다른 한자로 옮겨 적은 것입니다. 뜻은 그대로 두고 글자만 바꾼 셈이죠. 이름의 껍데기는 바뀌었지만 알맹이는 그대로 이어진 겁니다.
이때 전주는 1주 1소경 10군 31현을 거느리는 큰 고을이 됩니다.

5. 후백제의 도읍이 되다
전주 이름이 가장 무거웠던 순간은 900년입니다.
광주 일대를 근거로 세력을 키우던 견훤이 도읍을 전주로 옮기고 후백제를 선포했습니다. 지방 행정도시였던 전주가 한 나라의 수도가 된 거예요.
후백제는 936년 고려에 무너질 때까지 36년을 이어갔습니다. 짧다면 짧지만, 전주가 한 나라의 수도였던 특별한 시기입니다.
전주 동쪽 승암산 자락의 동고산성은 오랫동안 견훤의 왕궁터로 거론돼 온 곳입니다. 발굴 과정에서 큰 건물터와 함께 ‘전주성(全州城)’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나오면서, 후백제와의 연관성에 힘이 실렸습니다.

6. 고려시대, 전주는 7개의 이름으로 7번 바뀌었다
936년, 고려가 후백제를 멸망시키면서 전주의 이름도 다시 바뀝니다. 후백제의 옛 도읍에는 ‘안남도호부’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불과 4년 뒤인 940년 다시 ‘전주’를 되찾습니다. 이후 지방제도가 바뀔 때마다 전주목, 승화절도안무사, 순의군, 안남대도호부라는 이름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그 사이 1018년에는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쳐 ‘전라도(全羅道)’가 만들어집니다. 이름은 전주의 ‘전’과 나주의 ‘라’를 합친 것입니다. 오늘날 ‘전라’라는 이름의 시작이죠. 전주는 1022년 다시 ‘전주’로 돌아옵니다.
고려 말에는 이름이 한 번 더 바뀝니다. 원나라 사신을 가두는 사건으로 1355년 전주가 부곡으로 강등됐다가, 이듬해인 1356년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됩니다. 백제 때 사용했던 ‘완산’이라는 이름이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행정명에 등장한 것이죠.
정리하면 고려시대 전주에는 안남도호부 → 전주 → 전주목 → 승화절도안무사 → 순의군 → 안남대도호부 → 전주 → 완산부의 순서로 이름과 행정명칭이 이어집니다.
고려가 끝날 무렵 이 도시의 이름은 ‘전주’가 아니라 ‘완산’이었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전주’라는 이름이 다시 자리 잡는 건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입니다.
원나라 사신을 왜 가뒀을까? 원나라 사신 예스부카가 전주에서 전라도안렴사 정지상을 결박해 모욕하자, 정지상은 전주 관리들과 함께 예스부카를 붙잡아 가뒀습니다. 원나라 사신을 감금한 사건은 큰 외교 문제로 번졌고, 공민왕은 정지상과 관련 관리들을 처벌한 뒤 전주를 부곡으로 강등했습니다.

7. 조선 왕실의 본향이 되다
1392년 조선이 세워지면서 전주의 위상도 크게 달라집니다.
태조 이성계의 본관이 전주였기 때문입니다. 조선 왕실은 전주를 왕조의 뿌리가 시작된 곳으로 여겼고, 고려 말의 ‘완산부’는 ‘완산유수부(完山留守府)’로 승격됩니다.
그리고 1403년 태종 때 다시 ‘전주부(全州府)’가 됩니다. 고려 말 잠시 사라졌던 ‘전주’라는 이름이 돌아온 것이죠. 이때부터 전주는 조선시대 내내 도시의 중심 이름으로 자리 잡습니다.
왕실의 본향이라는 흔적은 도시 곳곳에 남았습니다. 1410년에는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모실 어용전이 세워졌고, 훗날 경기전이라 불리게 됩니다.

이어 1439년에는 전주사고가 설치됩니다. 임진왜란 때 다른 사고의 실록이 대부분 불탔지만, 손홍록과 안의 등이 전주사고본을 내장산으로 옮겨 지켜냈습니다. 임진왜란 뒤 조선왕조실록을 다시 만들어 보존할 수 있었던 바탕이 바로 이 전주사고본입니다.
전주는 왕실의 본향이면서 동시에 전라도의 행정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전라감영이 전주에 자리했고, 이곳에서 지금의 전북과 전남은 물론 제주도까지 아우르는 넓은 지역을 관할했습니다.
왕실의 뿌리와 전라도의 행정 중심지. 조선시대 전주는 이 두 역할을 함께 가진 도시였습니다.
풍패지향(豊沛之鄕) ‘풍패’는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 이름입니다. 조선은 왕조를 연 가문의 본향이라는 뜻으로 전주를 ‘풍패지향’이라 불렀어요. 전주객사 편액에 새겨진 ‘풍패지관(豊沛之館)’, 전주부성 남문의 이름 ‘풍남문(豊南門)’에 다 이 글자가 들어 있습니다. 도시 별명이 건물 이름과 문 이름에까지 새겨진 셈입니다.

8. 전주와 완주, 다시 나란히 등장하다
1896년 전라도가 남북으로 나뉘면서 전주는 전라북도의 중심지가 됩니다.
1914년 전주군 안에 전주면이 생겼고, 1931년에는 전주읍으로 커집니다. 그리고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해 전주군에서 분리됩니다. 남은 전주군은 ‘완주군(完州郡)’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도시의 중심은 ‘전주’, 그 주변은 ‘완주’. 오래전 한 뿌리였던 ‘전(全)’과 ‘완(完)’이 근대에 다시 나란히 등장한 셈이죠.
1949년 전주부는 전주시가 됐고, 1989년에는 완산구와 덕진구가 생겼습니다. 옛 이름 ‘완산’의 ‘완’은 다시 전주의 자치구 이름으로도 남게 됐습니다.
그리고 2024년 전라북도가 전북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전주는 지금도 그 도청 소재지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주 이름 유래 연표
전주 이름의 변천
| 시대 | 연도 | 이름 | 의미와 변화 |
|---|---|---|---|
| 백제 | 백제 시대 | 완산(完山) | ‘온전하다’는 우리말 ‘온’과 연결해 풀이되는 이름 |
| 신라 | 685년~ | 완산주(完山州) | 신문왕 때 설치되어 신라 9주의 하나가 됨 |
| 통일신라 | 757년~ | 전주(全州) | 경덕왕의 지명 개편으로 ‘완’을 같은 뜻의 ‘전’으로 바꿈 |
| 후백제 | 900년~ | 전주(도읍) | 견훤이 도읍을 옮겨 후백제를 세움 |
| 고려 | 936년~ | 안남도호부 | 후백제 멸망 뒤 설치 |
| 940년~ | 전주 | 태조 때 다시 전주라는 이름으로 환원 | |
| 983년~ | 전주목 | 전국 12목 가운데 하나로 설치 | |
| 993년~ | 승화절도안무사 | 성종 때 지방제도 개편으로 행정 명칭이 바뀜 | |
| 995년~ | 순의군 | 12주 절도사 체제에서 순의군으로 개편 | |
| 1018년~ | 안남대도호부 | 고려의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행정 지위가 다시 바뀜 | |
| 1022년~ | 전주 | 다시 전주라는 이름으로 환원 | |
| 1356년~ | 완산부(完山府) | 1355년 부곡 강등 뒤 복구되며 옛 이름 ‘완산’이 다시 등장 | |
| 조선 | 1392년~ | 완산유수부 | 조선 건국 뒤 왕실의 본향으로 승격 |
| 1403년~ | 전주부(全州府) | 태종 때 전주부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내내 중심 이름으로 이어짐 | |
| 근대 | 1895년~ | 전주부 전주군 | 23부제 시행으로 전주부에 속한 전주군이 됨 |
| 1896년~ | 전라북도 전주군 | 13도제 시행으로 전라도가 남북으로 나뉘며 전라북도에 속함 | |
| 일제강점기 | 1931년~ | 전주읍 | 전주면이 전주읍으로 승격 |
| 1935년~ | 전주부 | 전주읍이 전주부로 분리되고, 남은 전주군은 완주군으로 개칭 | |
| 대한민국 | 1949년~ | 전주시 | 지방자치법 시행으로 전주부가 전주시로 변경 |
| 2024년~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 전북특별자치도 출범, 도청 소재지 역할을 이어감 |
오늘의 전주, 한국의 전통을 세계로
오늘날 전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도시입니다. 전주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한옥·한식·한지·판소리 같은 전통문화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특히 전주는 한국 최초의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됐고,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세계소리축제를 통해 영화와 음악 분야에서도 세계와 만나고 있습니다.
옛 이름과 전통을 품은 채, 그것을 오늘의 문화로 다시 피워내는 도시. 전주는 천 년의 시간을 지나 지금도 새로운 이름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AI가 추천하는 전주 역사 여행
1. 동고산성(견훤왕궁터)
후백제의 왕궁터로 거론돼 온 산성입니다. 큰 건물터와 ‘전주성(全州城)’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나오면서 후백제와의 연관성이 주목받았어요. 한옥마을 동쪽 승암산 자락에 있습니다.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산25
- 관람: 상시 개방, 무료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산성 유적)
- 홈페이지: 투어전북 동고산성
2. 전라감영
조선왕조 500여 년 내내 전라도 전체를 총괄하던 관청 자리입니다. 조선시대 전라도는 지금의 전북과 전남, 제주도까지 아우르는 지역이었어요. 1896년 이후 도청으로 쓰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졌고, 2005년 전북도청이 옮겨가면서 복원 논의가 본격화돼 지금 모습으로 되살아났습니다.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로 55
- 관람: 무료
- 문의: 063-281-2977
- 홈페이지: 전주 문화관광
3. 경기전과 어진박물관
1410년 태조 어진을 모시려고 세운 곳입니다. 전주가 왕실의 본향이 되면서 생긴 공간이라, ‘전주부’라는 이름의 무게를 가장 잘 보여줘요. 경내 동쪽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가 있고, 북쪽엔 왕실 시조 사당인 조경묘, 그 옆에 태조 어진의 내력을 다룬 어진박물관이 있습니다.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 관람: 3~5월·9~10월 09:00~19:00, 6~8월 09:00~20:00, 11~2월 09:00~18:00 (매표 마감 1시간 전)
- 관람료: 어른 3,000원 / 청소년·대학생·군인 2,000원 / 어린이 1,000원 (전주시민 할인 별도)
- 문의: 063-281-2788
- 홈페이지: 전주 문화관광
4. 오목대와 이목대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잔치를 열었다고 전하는 곳이 오목대, 그의 선조가 살았다고 전하는 터가 길 건너 이목대입니다. 전주가 ‘왕실의 본향’으로 불리게 된 이야기가 압축된 장소이자, 한옥마을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좋은 자리이기도 해요.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55(교동)
- 관람: 상시 개방, 무료
- 홈페이지: 전주 문화관광
5. 전주 풍패지관(전주객사)
조선시대 전주를 찾은 관리들이 머물던 객사입니다. 건물에 걸린 ‘풍패지관(豊沛之館)’ 편액이 왕조를 연 가문의 본향이라는 전주의 별명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한옥마을이 아니라 시내 한복판에 있어 놓치기 쉽지만, 이름 이야기로 보면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충경로 59
- 관람: 상시 개방, 무료
- 홈페이지: 전주 문화관광
AI 추천 동선
시간 여유가 있다면 동고산성 → 오목대·이목대 → 경기전 → 전라감영 → 풍패지관 순으로 둘러보세요. 후백제에서 조선까지 전주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반나절이라면 동고산성은 빼고 한옥마을 권역의 오목대·이목대, 경기전, 전라감영, 풍패지관을 걸어보는 코스를 추천합니다.
주요 참고자료
- 전주시, 「전주의 의미와 유래」
- 전북연구원, 「전북지역에서의 한·마한·백제·가야」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전주」·「완산주와 청주를 설치하고 비로소 9주를 정비하다」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견훤이 후백제왕을 자칭하다」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고려사』 「전주」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고려사절요』 「정지상이 원 사신을 가두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주 경기전」·「전주사고」
- 전주시, 「행정연혁」
-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Jeonju」
-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 전주세계소리축제 공식 홈페이지
- 전주 문화관광
- 투어전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