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으로 다시 보는 대한민국 ⑦
미추홀에서 시작해 칠대어향의 별명을 받고 오늘의 인천광역시가 되기까지

인천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문입니다. 바다 건너 세계로 향하는 비행기와 대형 선박, 송도국제도시의 높은 건물은 오늘날 인천을 보여주는 익숙한 풍경입니다. 세계를 향해 열린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여러 길이 교차하고, 서로 다른 나라와 문화가 맞닿는 자리였습니다.
도시의 이름에도 그런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인천이 지나온 이름들은 슬프고, 아름답고, 때로는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오래된 이야기의 첫 장면에 ‘미추홀’이 있습니다.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선 한 형제와, 서로 다른 선택 끝에 남겨진 슬픈 사연. 인천 이름 유래는 이 오래된 이름에서 시작됩니다.
1. 미추홀, 형제의 나라가 시작되다
기원전 18년, 고구려를 떠난 두 형제가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동생 온조는 지금의 서울 일대인 위례성에 나라를 세웠고, 형 비류는 조금 더 서쪽의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그가 자리 잡은 곳이 ‘미추홀(彌鄒忽)’, 오늘날의 인천으로 전해지는 땅입니다.
현재는 문학산 일대를 비류의 미추홀과 관련된 곳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닷가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삼국사기』는 땅이 습하고 물이 짜 사람들이 편안히 살기 어려웠다고 전합니다. 비류는 위례성의 안정된 모습을 본 뒤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따르던 사람들은 온조의 백제에 합류했습니다.
『삼국사기』가 전하는 인천의 첫 장면입니다.
미추홀 이름의 뜻을 보면 이렇습니다. 뒤의 ‘홀(忽)’은 고대 지명에서 ‘성’이나 ‘고을’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됩니다. ‘미추홀’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매소홀’과 같은 이름으로 기록되는데, ‘매’는 물을 뜻하는 옛말의 표기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를 따르면 미추홀은 ‘물가의 고을’ 정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2. 매소홀현, 삼국의 경계에 놓이다
한강 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다툼이 치열해지면서 미추홀의 주인도 바뀌었습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한 뒤 이 지역은 고구려 영역에 들어갔고, ‘매소홀현(買召忽縣)’이라는 행정구역으로 기록됩니다.
하지만 매소홀은 미추홀과 전혀 다른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삼국사기』 지리지는 매소홀현을 ‘미추홀’이라고도 불렀다고 기록합니다. ‘미추홀’과 ‘매소홀’은 같은 토박이 지명을 서로 다른 한자로 옮긴 이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오래전부터 불리던 지명의 흔적은 그대로 이어진 셈입니다.
이후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는 백제·고구려·신라의 경쟁이 계속되면서 매소홀 일대 역시 여러 세력의 경계에 놓였습니다. 결국 이 지역은 신라의 영역으로 들어갔고, 757년 경덕왕의 지명 개편 때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됩니다.

3. 소성현, 신라에서 한자 이름을 얻다
757년 통일신라 경덕왕은 전국의 지명을 한자식으로 정비했습니다. 이때 ‘매소홀현’은 ‘소성현(邵城縣)’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미추홀’과 ‘매소홀’이 오래된 토박이 지명의 소리를 한자로 옮긴 이름이었다면, ‘소성’은 신라의 행정체계에 맞춰 새로 정한 한자식 이름이었습니다. 이름이 바뀌면서 이 지역도 통일신라의 지방 행정체계 안에 더 분명하게 자리 잡게 됩니다.
소성현은 지금의 과천 일대에 있던 율진군에 딸린 현이었습니다. 당시 인천은 독립된 큰 고을이라기보다 더 큰 행정구역 아래에 놓인 작은 지역이었습니다.

4. 경원과 인주, 왕실 외가의 고향으로 이름을 떨치다
고려에 들어서면서 인천의 위상은 뜻밖의 이유로 크게 달라집니다. 1018년 ‘소성현’은 이웃한 ‘수주(樹州, 지금의 부평·계양 일대)’에 딸린 고을이 되면서 한동안 작은 고을로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고을에서 성장한 한 집안이 역사의 흐름을 바꿉니다. 바로 ‘인주 이씨’, 또는 ‘경원 이씨’라 불린 가문입니다.
1095년 숙종은 어머니 인예왕후의 고향인 소성현을 ‘경사의 근원’이라는 뜻의 ‘경원군(慶源郡)’으로 높였습니다.
1133년에는 인종의 어머니 순덕왕후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경원군’을 ‘인주(仁州)’로 바꾸고 지위도 높였습니다. 오늘날 ‘인천’에 남아 있는 ‘인(仁)’ 자가 이때 처음 지명에 등장합니다.
문종의 왕비였던 인예태후·인경현비·인절현비의 이름에 공통으로 쓰인 글자이자 유교의 덕목인 ‘인(仁)’을 담아 ‘인주’라는 이름을 정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1390년 공양왕은 왕실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이 지역을 다시 ‘경원부’로 승격했습니다.
칠대어향(七代御鄕) 문종부터 인종까지 7대에 걸쳐 인주 이씨 가문에서 다섯 명의 왕비가 나왔습니다. 이 때문에 인천은 왕실의 외가 고을이라는 뜻으로 ‘칠대어향’이라 불렸습니다.

5. 1413년, ‘인천’이라는 이름이 완성되다
조선이 건국된 1392년, ‘경원부’는 다시 ‘인주’가 됐습니다.
1413년 태종은 지방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군이나 현의 이름에 들어 있던 ‘주(州)’를 ‘산(山)’이나 ‘천(川)’으로 바꾸도록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주(仁州)’의 ‘인(仁)’은 남고, ‘주(州)’ 대신 ‘천(川)’이 붙었습니다.
이렇게 ‘인주’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천(仁川)’이 되었습니다.
한자만 풀어보면 인천은 ‘어진 내’라는 뜻입니다. ‘인(仁)’은 어질다는 뜻이고, ‘천(川)’은 내나 하천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천이라는 이름은 실제로 ‘어진 내’라는 자연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 아닙니다. 고려시대의 이름인 ‘인주’와 조선의 군·현 이름 개편이 만나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1459년에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외향이라는 이유로 인천군이 ‘인천도호부’로 승격됐습니다. 도호부의 중심은 지금의 항구가 아니라 문학산 북쪽 관교동 일대였습니다. 1688년 승려 여환 등이 역모를 꾀한 사건으로 ‘인천현’으로 강등됐다가 1697년 다시 도호부로 복구됐습니다.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도 왕실과 정치적 사건이 고을의 지위를 바꾼 것입니다.
인천시민의 날 인천시는 10월 15일을 인천시민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날은 1965년 처음 제정됐으며, 1994년부터 ‘인천’이라는 이름이 생긴 10월 15일로 정해졌습니다.

6. 개항, 인천이 세계와 만나다
1883년, 인천은 부산과 원산에 이어 조선의 세 번째 개항장이 됩니다. 수도 한양과 가까운 항구가 열린다는 점에서 인천의 개항은 의미가 컸습니다.

이때부터 인천의 중심도 달라집니다. 그동안 관아가 있던 문학동·관교동 일대에서 작은 포구였던 ‘제물포’로 중심축이 옮겨간 것입니다.
항구 주변에는 외국인 거류지와 각국 영사관, 상점과 창고가 들어섰습니다. 제물포는 인천이 세계와 만나는 새로운 관문으로 성장했습니다.
제물포와 제물량 조선 초 인천 서쪽 해안에는 ‘제물량(濟物梁)’이라는 수군 진지가 있었습니다. ‘제물포’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됐습니다. 개항 뒤 항구 주변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제물포라는 이름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당시 외국의 문서와 기록에는 인천항이 주로 ‘Chemulpo’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습니다. 오늘날 ‘제물포역’이라는 이름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7. 나뉘고 넓어지며, 광역시가 되다
근대 이후 인천의 이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도시의 경계는 쉴 새 없이 바뀌었습니다.
1895년 전국을 23부로 나누면서 ‘인천부’라는 큰 행정구역이 생겼습니다. 인천군을 비롯해 부평·강화·김포·시흥·안산·수원 등 경기 서남부의 12개 군을 관할했습니다. 그 안에는 옛 인천도호부 지역을 가리키는 ‘인천군’도 따로 있었습니다.
이듬해인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상위 행정구역이었던 인천부는 사라졌습니다. 인천 지역은 경기도에 속한 ‘인천부’가 됐습니다.
1914년 일제가 전국의 부와 군을 통폐합하면서 인천부는 개항장 일대만 남을 만큼 크게 줄었습니다. 이후 1936년과 1940년에 주변 지역이 차례로 편입되면서 다시 넓어졌습니다.
광복 직후인 1945년에는 ‘제물포시’라는 이름이 보름 남짓 사용됐다가 다시 ‘인천부’로 돌아왔습니다.
1949년 인천부는 ‘인천시’가 됐습니다. 1981년에는 경기도에서 분리돼 ‘인천직할시’가 됐고, 1995년 ‘인천광역시’로 이름을 바꾸면서 강화군·옹진군과 김포군 검단면을 새로 품었습니다.

인천 이름의 변천
| 시대 | 연도 | 이름 | 의미와 변화 |
|---|---|---|---|
| 백제 | 백제 초기 | 미추홀 | 비류가 자리 잡았다고 전하는 인천 최초의 지명 |
| 고구려 | 475년~ | 매소홀현 | 고구려가 이 지역에 설치한 행정구역 |
| 신라 | 757년~ | 소성현 | 경덕왕의 지명 개편으로 한자식 이름으로 변경 |
| 고려 | 1095년~ | 경원군 | 숙종 어머니 인예왕후의 고향으로 대우받아 승격 |
| 1133년~ | 인주 | ‘인’이 처음 지명에 등장 | |
| 1390년~ | 경원부 | 칠대어향으로 인정받아 승격 | |
| 조선 | 1392년~ | 인주 | 조선 건국과 함께 경원부에서 다시 인주로 변경 |
| 1413년~ | 인천군 | 군·현 이름 개편으로 ‘주’를 ‘천’으로 변경 | |
| 1459년~ | 인천도호부 | 정희왕후의 외향으로 대우받아 도호부로 승격 | |
| 1895년~ | 인천부·인천군 | 23부제 시행으로 인천부와 그 아래 인천군을 설치 | |
| 1896년~ | 경기도 인천부 | 13도제 시행으로 경기도에 편입 | |
| 일제강점기 | 1914년~ | 인천부 | 개항장 일대만 남고 나머지 지역은 부천군에 편입 |
| 대한민국 | 1945년 10월 10일 | 제물포시 | 광복 직후 인천부를 개칭했으나 18일 동안만 사용 |
| 1945년 10월 28일 | 인천부 | 제물포시에서 다시 인천부로 환원 | |
| 1949년~ | 인천시 | 지방자치법 시행으로 부를 시로 변경 | |
| 1981년~ | 인천직할시 | 경기도에서 분리돼 정부 직할시로 승격 | |
| 1995년~ | 인천광역시 | 광역시로 개편되며 현재의 이름을 갖춤 |
오래된 이름들이 돌아오다
2018년, 인천의 오래된 이름 하나가 다시 행정구역의 이름으로 돌아왔습니다.
1968년 행정 편의에 따라 붙었던 방위식 지명 ‘남구’가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미추홀구(彌鄒忽區)’로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미추홀’은 『삼국사기』에 비류가 자리 잡았다고 전하는 인천의 옛 지명입니다. 오랜 세월 역사 속에 남아 있던 이름이 2천여 년이 지나 오늘날의 자치구 이름으로 되살아난 셈입니다.
그리고 2026년 7월에는 개항장의 기억을 간직한 ‘제물포’도 ‘제물포구’라는 이름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존 중구의 내륙 지역과 동구가 합쳐져 새 자치구가 출범한 것입니다.
미추홀에서 매소홀로, 다시 소성·경원·인주를 거쳐 인천으로 이어진 이름의 역사. 그 긴 여정은 오래된 이름들이 오늘의 행정지명으로 되살아나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름의 변천과 관련된 방문지
1. 문학산성과 문학산역사관
비류의 미추홀과 관련된 장소로 거론되는 문학산 일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문학산 정상은 2015년 일반에 개방됐고, 정상부 군사시설을 고쳐 만든 역사관에서 문학산성과 인천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 주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78-24(문학산 정상부)
- 관람: 10:00~17:00(12~2월 10:00~16:30), 무료·월요일 휴관
- 문의: 032-880-7972
- 홈페이지: 인천투어 문학산역사관
2. 인천도호부관아 재현시설
조선시대 인천도호부의 중심이 관교동 일대였음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현재 관람하는 시설은 『화도진도』를 참고해 2001년 조성한 재현시설입니다. 문학초등학교 안에는 원래 관아 건물인 객사와 동헌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 주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89
- 관람: 3~10월 10:00~19:00, 11~2월 10:00~18:00, 무료·월요일 휴관
- 문의: 032-422-3492
- 홈페이지: 인천도호부관아
3. 원인재
고려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맺었던 인주 이씨의 역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인주 이씨 중시조 이허겸의 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준비하던 재실입니다.

- 주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경원대로 322
- 관람: 4~10월 09:00~17:00, 11~3월 10:00~16:00, 무료·연중무휴
- 문의: 032-749-7314
- 홈페이지: 인천투어 원인재
4. 자유공원과 개항장거리

제물포 개항 이후 인천의 중심이 항구 쪽으로 이동한 모습을 살펴보기 좋은 지역입니다. 자유공원과 옛 조계지, 근대건축물을 함께 걸으면 개항장이 형성된 공간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주소: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자유공원남로 25
- 관람: 상시 개방, 무료
- 문의: 032-760-7597
- 홈페이지: 인천투어 자유공원
5. 인천도시역사관
근대 이후 인천의 행정구역 확장과 송도국제도시의 형성까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미추홀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오늘의 광역도시로 연결하기 좋은 마무리 장소입니다.

- 주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타워대로 238
- 관람: 화요일~일요일 09:00~18:00, 무료
- 문의: 032-850-6000
- 홈페이지: 인천도시역사관
한량 아빠 추천 동선
하루에 모두 둘러보기보다 옛 인천과 개항 이후 인천을 두 갈래로 나누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미추홀과 조선시대 인천은 ‘문학산성과 문학산역사관 → 인천도호부관아 → 원인재’로 묶고, 개항 이후의 변화는 ‘자유공원 → 개항장거리 → 인천도시역사관’으로 이어가면 도시의 중심이 문학산에서 항구와 송도로 옮겨간 흐름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