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으로 다시 보는 대한민국 ⑤
바다의 고을 해읍에서, 여수와 여천을 지나 다시 아름다운 바다 여수가 되기까지

여수라는 이름을 들으면 바다가 먼저 떠오릅니다.
돌산대교 너머로 반짝이는 밤바다, 섬 사이로 이어지는 푸른 물길,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어느 순간부터 ‘여수 밤바다’라는 말은 노래 제목을 넘어 도시의 풍경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수(麗水)라는 이름부터가 참 여수답습니다.
‘고울 려(麗)’에 ‘물 수(水)’.
글자 그대로 ‘아름다운 물’입니다.
동해(東海), 해남(海南)처럼 바다를 품은 이름을 가진 도시는 있습니다. 하지만 바다의 아름다움까지 이름에 담은 도시는 드뭅니다.
여수는 물 앞에 ‘고울 려(麗)’를 붙였습니다. 그 시절 이 바다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답게 느꼈으면, 그 마음을 이름에까지 담았을까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부르는 ‘여수’가 처음부터 이곳의 이름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이름도 달라졌고, 행정적인 지위도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여수 이름의 변천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바다의 도시와는 조금 다른 여수를 만나게 됩니다.
여수라는 이름에는 어떤 시간이 쌓여 있을까요.

1. 원촌에서 해읍으로, 이름의 시작
기록에서 확인되는 여수의 첫 이름은 원촌현(猿村縣)입니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에는 오늘날 여수 지역이 본래 백제의 원촌현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수 지역의 역사에서는 백제 성왕이 사비로 천도한 538년 무렵, 이 일대를 남방의 삽평군에 속한 원촌현과 돌산현으로 봅니다.

지금의 여수 전체가 처음부터 하나의 고을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육지 쪽에는 원촌현이 있었고, 현재의 돌산 일대에는 별도의 돌산현(突山縣)이 있었습니다.
757년 신라 경덕왕 때 전국의 지명을 정비하면서 원촌현은 해읍현(海邑縣)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돌산현도 이때 여산현(廬山縣)으로 바뀌었습니다.
해읍은 이름만 봐도 이 지역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海는 바다, 邑은 고을. 글자 그대로 풀면 ‘바다의 고을’입니다.
오늘날 여수를 생각하면 꽤 잘 어울립니다. 도시 앞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 수많은 섬이 이어지는 곳. 지금은 그 풍경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옛사람들에게 바다는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려가 들어선 뒤, 마침내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하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여수.
2. 고려시대, ‘여수’라는 이름이 등장하다
940년 고려 태조 때 해읍현은 여수현(麗水縣)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이곳이 본래 백제의 원촌현이었고, 신라 경덕왕 때 해읍현으로 고쳤다가 고려에 들어 여수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선 이름인 해읍이 ‘바다의 고을’이었다면, 고려에 들어 이곳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여수’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섬 사이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와 해 질 무렵 붉게 물드는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오래전 사람들이 이곳을 ‘여수’라 부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1350년에는 여수현에 현령이 파견됩니다. 그동안 순천의 전신인 승평군에 속해 있던 여수에 현령이 따로 파견되며 하나의 고을로 다스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별도의 고을로 자리 잡기 시작한 여수는 조선에 들어 다시 큰 행정적 변화를 맞습니다.

3. 조선의 여수, 순천부 관할이 되다
조선이 건국된 뒤인 1396년, 여수현은 별도의 고을 지위를 잃고 순천부가 관할하는 지역으로 편입됩니다.
이 일을 두고는 고려의 마지막 여수현령 오흔인이 새 왕조인 조선에 협조하지 않아 여수현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다만 이 내용은 당시의 공식 기록이 아니라 후대 족보를 통해 전해진 이야기입니다.
그 뒤 여수는 전혀 다른 이유로 조선 역사에서 중요한 곳이 됩니다.
1479년, 여수에 전라좌수영이 설치됩니다. 전라도 동쪽 바다의 수군을 지휘하는 중심지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입니다.
1591년에는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했습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여수에서 준비한 전라좌수군을 이끌고 바다로 나아갔고, 여수는 조선 수군의 중요한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진남관과 여수 원도심 곳곳에 남은 수군의 흔적은 이 시기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4. 삼복삼파, “의지할 곳 없는 땅”
전라좌수영이 자리한 여수는 중요한 군사 거점이었지만, 지역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도 컸습니다.
복현을 요구한 기록에는 순천부의 행정과 부역에 더해 수영의 군사적 부담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조선 후기에는 여수를 다시 하나의 고을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고을의 지위를 되찾았다가 다시 잃는 일도 반복됐습니다.
여수에서는 이 과정을 ‘삼복삼파(三復三罷)’라고 부릅니다. 여수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돌아왔다는 뜻이 아니라, 여수가 하나의 고을이 되었다가 다시 그 지위를 잃는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는 이야기입니다.
19세기에도 복현 요구는 이어졌습니다. 1864년 정종선은 복현 상소를 올려, 순천부와 전라좌수영 사이에서 서로 책임을 미루는 바람에 여수가 ‘아무데도 의지할 곳이 없는(無所庇依) 땅’이 되었다고 호소했습니다.
마침내 1895년 전라좌수영이 폐지되고, 1897년에는 칙령 제21호에 따라 여수군이 설치됩니다. 복현 요구가 거듭된 끝에 여수가 다시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5. 여수와 여천, 다시 하나의 여수로
1897년 여수군이 설치된 뒤, 여수는 다시 근현대의 행정구역 변화를 겪습니다.
여수군의 중심이었던 여수면은 1931년 여수읍이 되고, 광복 이후인 1949년에는 여수시로 승격합니다. 이때 기존 여수군에서 여수읍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여천군(麗川郡)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됩니다.
이후 여천 지역은 산업화와 함께 빠르게 성장했고, 1986년에는 여천군의 일부 지역이 떨어져 나와 여천시가 새로 만들어집니다.
그 결과 이 일대에는 여수시·여천시·여천군 세 개의 행정구역이 함께 존재하게 되었고, 이를 흔히 ‘삼려(三麗)’, 또는 ‘3려’라고 불렀습니다.
생활권과 산업권이 서로 이어져 있던 세 지역에서는 통합 논의가 이어졌고, 1997년 주민의견조사를 거쳐 1998년 4월 1일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이 하나의 여수시로 통합됩니다.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한 ‘여수’라는 이름은 여수와 여천으로 나뉘었던 시간을 지나, 다시 하나의 아름다운 바다 여수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6. 여수 이름의 변천사 연표
| 시대 | 연도 | 이름 | 의미와 변화 |
|---|---|---|---|
| 백제 | 백제 시대 | 원촌현·돌산현 | 오늘날 여수 일대의 옛 이름. 육지 쪽은 원촌현, 돌산 일대는 돌산현으로 전해짐 |
| 신라 | 757년 | 해읍현·여산현 | 경덕왕 때 원촌현은 해읍현, 돌산현은 여산현으로 개칭 |
| 고려 | 940년 | 여수현 | 해읍현을 여수현으로 개칭.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여수’라는 이름이 등장 |
| 1350년 | 여수현 | 현령이 파견되며 여수를 따로 다스리는 행정 체제가 마련됨 | |
| 조선 | 1396년 | 순천부 관할 여수 | 여수현이 별도의 고을 지위를 잃고 순천부가 관할하는 지역으로 편입 |
| 1479년 | 전라좌수영 | 여수에 전라좌수영이 설치되며 남해 방어의 중요한 수군 거점이 됨 | |
| 조선 후기 | 삼복삼파 | 여수를 다시 하나의 고을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며 복설과 순천 편입이 반복 | |
| 대한제국 | 1897년 | 여수군 | 여수군이 설치되며 여수가 다시 별도의 행정구역이 됨 |
| 일제강점기 | 1931년 | 여수읍 | 여수면이 여수읍으로 승격 |
| 대한민국 | 1949년 | 여수시·여천군 | 여수읍이 여수시로 승격하고, 기존 여수군에서 여수읍을 제외한 지역은 여천군이 됨 |
| 1986년 | 여수시·여천시·여천군 | 여천군 일부가 여천시로 분리되며 이른바 ‘삼려’ 체제가 형성 | |
| 1998년 | 통합 여수시 | 주민의견조사를 거쳐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이 하나의 여수시로 통합 |
※ ‘삼복삼파’는 여수라는 이름이 사라졌다가 다시 생겼다는 뜻이 아니라, 여수가 하나의 고을이 되었다가 다시 순천부 관할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었다는 뜻입니다.
7. 벚꽃이 휘날리는 밤바다 여수
여수의 이름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원촌과 해읍을 지나 여수가 되었고, 순천부에 속했던 시간을 거쳐 여수와 여천으로 나뉘었다가 다시 하나의 여수가 되었습니다.
그 긴 시간을 지나 오늘의 여수에 서면, 결국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다입니다.
한때 ‘바다의 고을’이라 불렸고, ‘아름다운 물’이라는 이름을 얻은 곳. 이제 여수의 바다는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특히 한 노래가 들려준 ‘여수 밤바다’는 많은 사람에게 여수를 조금 다른 도시로 기억하게 했습니다. 꼭 무엇을 보러 가지 않아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과 그저 바닷가를 걷는 것만으로 여행이 되는 곳. 여수에는 그런 낭만이 생겼습니다.
2012년에는 세계 사람들이 여수의 바다에 모였고, 2026년에는 여수세계섬박람회가 다시 섬과 바다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봄이면 벚꽃이 흩날리고, 해가 지면 바다 위로 불빛이 번집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오래전 이곳에 麗水라는 이름을 붙였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벚꽃이 휘날리는 아름다운 바다, 여수.
8. 여수의 이름과 역사를 만날 곳
1. 진남관·고소대 일대
전라좌수영의 중심이었던 진남관과 이순신 장군의 군사 활동과 관련된 고소대를 함께 둘러볼 수 있습니다. 진남관은 1599년에 세워진 객사이고, 고소대에는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타루비가 남아 있습니다. 두 곳을 이어 걸으면 여수가 남해를 지키는 중요한 수군도시였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습니다.

- 주소: 진남관: 전남 여수시 동문로 11 / 고소대: 전남 여수시 고소3길 13
- 휴무: 고소대 연중무휴 · 진남관은 방문 전 공식 안내 확인 권장
- 전화: 진남관 061-659-5710 / 고소대 061-659-4755
- 요금: 무료
- 홈페이지: 진남관 공식 안내 / 고소대 공식 안내
2. 여수 선소유적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들던 곳으로 전해지는 선소유적은 조선시대에도 수군의 중요한 군선 제작·수리 현장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을 만들었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굴강과 세검정·군기고 등 수군과 관련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전라좌수영의 역사를 건물뿐 아니라 실제 군선 제작 현장까지 이어서 볼 수 있는 곳입니다.

- 주소: 전남 여수시 선소마을길 33
- 관람시간: 연중개방
- 휴무: 연중무휴
- 전화: 061-659-4756
- 요금: 무료
- 홈페이지: 여수 선소유적 공식 안내
3. 하멜전시관
1653년 제주에 표착한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은 여러 지역을 거쳐 여수에서 3년 6개월을 지냈고, 1666년 이곳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하멜전시관에서는 하멜의 눈으로 본 17세기 조선과 그가 여수에 머문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선 수군의 도시 여수가 바다를 통해 세계와 닿았던 또 다른 장면입니다.

- 주소: 전남 여수시 하멜로 96
- 관람시간: 09:00~18:0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 전화: 061-659-5706
- 요금: 무료
- 홈페이지: 하멜전시관 공식 안내
4. 여수세계박람회장
2012년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을 주제로 세계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가 이곳에 모여 바다와 연안의 미래를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은 스카이타워 전망대와 아쿠아플라넷 여수, 빅오(Big-O), 수변공원과 산책로 등이 있어 박람회의 흔적과 오늘의 여수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 주소: 전남 여수시 박람회길 1
- 박람회기념관: 10:00~18:00, 입장 마감 17:3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 전화: 061-659-2087
- 요금: 야외 박람회장 산책은 무료 · 개별 시설은 별도
- 홈페이지: 여수엑스포관리 주식회사
※ 관람시간과 휴관일은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각 장소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량아빠 추천
여수의 역사를 따라 걷는다면 위 동선으로 원도심을 먼저 둘러보세요. 전라좌수영과 임진왜란의 흔적에서 17세기 하멜의 이야기까지 걸어서 자연스럽게 이어볼 수 있습니다.
선소유적은 원도심에서 떨어져 있으니 이동 시간을 따로 잡는 편이 좋습니다. 마지막은 여수세계박람회장과 밤바다로 마무리하면 오래된 수군도시에서 오늘의 해양도시까지 여수의 시간이 한 번에 이어집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웅천 이순신공원에는 여수의 역사와 문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여수박물관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여수시 계획상 2026년 11월 개관이 예정되어 있으니, 다음 여수 여행에는 새로운 역사 코스가 하나 더 생기겠네요.